바둑 4자성어 여행
교양 있는 바둑인이 되려면 모름지기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특히 4자성어 같은 건 필수다. 남들 재미있게 애기하는데 나만 몰라 무안했던 기억 다들 있지 않은가. 바둑 4자성어를 정리해 봤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우리 모두 보충해서 집대성합시다.
우선 맛배기로 하나 풀어보자. <망연자실>이 무슨 뜻일까?
‘황당한 일을 당하거나 어찌할 줄을 몰라 정신이 나간 듯이 멍함‘ 국어시험 때는 그런 답을 써내면 만점이다. 그러나 바둑동네에선 답이 전혀 달라진다.
‘망한 바둑 연구해봐야 자기만 실없어진다‘ 대충 그런 의미라고 한다.
<안하무인>
요건 ‘안조영은 하수를 만나도 무조건 인도적으로 둬 준다’는 의미다. 안조영 아닌 안달훈, 안영길이란 설도 있다. 뿐만이 아니다. 안관욱 안형준 안성준…그리고 보니 안씨 성 프로들은 모두 인품 좋기로 소문난 기사들이다.
<연목구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이라고? 우린 그렇게 어려운 건 모른다.
바둑동네에선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연습바둑에 목매달면 구단들도 어지럽다’라는 뜻이란다. 이 격언이 널리 퍼지면서 프로기사들의 연습대국 수가 10분의 1로 팍 줄었다는 소문이 있다.
<좌고우면>
左顧右眄. 이쪽저쪽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무엇을 결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며 망설임을 이르는 말. 사전에 이렇게 나와있다.
바둑계에선 ‘좌변에서 고생하다 우변에서 면피한다’는 뜻으로 바뀐다. 한 번 망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기회를 노리다 보면 반드시 때가 온다는 금쪽같은 말씀이다.
그럼 <죽마고우>는?
‘죽여 마땅한 고약한 우변 대마’. 상대방이 계속 손을 빼 큰 곳을 독점하면서 방치한 우변 대마는 꼭 잡아야한다. 그런데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니 환장할 노릇이다. 정녕 야속하고 고약한 우변 대마여….
<이열치열>
이 항목에 대해선 2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창호도 열심히, 조치훈도 열심히’다. 90년대 두 사람이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1인자로 맹활약할 때 한국 바둑팬들이 신이 나서 둘을 패키지로 격려하던 문구로 짐작된다.
또 하나는 둘의 대립이 전제된 해석이다. 이창호와 조치훈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대가들이지만 바둑판 앞에서만은 적(敵)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열치열>이 등장했다. ‘이창호가 열나게 잘 두면 조치훈은 열 받는다’란 의미라나.
<이심전심> 요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세돌이 심각하면 전체가 심각해진다’의 줄임말임이 밝혀졌다. 무슨 뜻이냐고? 이세돌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다. 그런 이세돌이 국제무대, 특히 단체전 같은데 나가서 패하면 우리 선수단 전체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세돌이 잘 풀려야 한국팀 전체가 잘 풀린다는 야그.
<조삼모사>
요건 국내 최고(最古) 타이틀인 국수를 갖고 있는 조 아무개 프로가 모델이다. 구체적으로 풀면 ‘조한승은 삼라만상 모두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조한승 프로의 별명이 ‘기부천사’란 거 모르는 사람 없다. 그가 삼라만상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베풂으로써 바둑계의 전체 위상이 올라갔다. 바둑계 모두의 자랑이요 기쁨이다.
4자성어의 대부분은 한자(漢字)로 표기된다. 또한 바둑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그러다 보니 바둑 4자성어엔 중국기사들의 등장 빈도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출몰하는 기사가 古力이다. 실제발음은 ‘구리‘지만 한자로 쓰일 때는 ‘고력‘이다.
<고진감래>
‘고력은 진 바둑은 감추고 내뺀다‘는 말의 줄임이란다. 구리(고력)는 대국 매너가 꽤 괜찮은 친구로 알려졌는데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알고 보니 이건 구리의 매너를 칭찬하는 성어다. 진 바둑 돌 안 거두고 마냥 붙들고 앉아있는 것이야 말로 진짜 꽝매너 아닌가. 구리여! 자주 내빼라.
<사고무친>
‘사혁(셰허)하고 고력은 친구가 없다‘ 저런! 왜 그럴까. 바둑이 너무 세서 아무도 같이 안 놀아주기 때문이란다. 그럼 둘이 친구하면 딱 되겠군.
<공피고아>
‘공걸(쿵제)이 피 흘리면 고력이 아프다’ 둘이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줄 몰랐다. 평소 국내에서 라이벌 관계였어도 농심배같은 단체전에 함께 출전하면 동료의 1패가 내 일처럼 아픈 법.
한데 고력이 피 흘릴 때 공걸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선 확인된 게 없다. 혹시 친구를 치료하기 위해 고약(膏藥)을 사러가지는 않을까. ㅋㅋ
<세고취화>
‘세돌이와 고력은 취하면 화낸다‘ 란 뜻이다.
바둑 약한 사람들이 술 먹고 함부로 화내면 2중으로 꼴불견이다. 하지만 구리나 이세돌쯤 되는 천하의 고수들은 뭘 해도 이뿌게 보인다. 이들쯤 되면 술에 안 취했는데 화를 내도 팬들이 다 용서한다.
실제론 어떨까. 두 사람 모두 주량이 엄청나지만, 그렇게 마시고도 취하거나 화내는 거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정확하게는 ‘세돌이와 고력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화도 잘 안 낸다’이다.
<하후상박>
후는 중국기사 후야오위(胡耀宇), 박은 한국의 배테랑 박영훈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야오위보다는 박영훈이 세다’는 뜻으로 결론이 났다. 그럼 <상후하박>은 그 반대 뜻이냐고? 절대 아니다. <상후하박>은 ‘상호(창하오)가 후퇴하다 하변에서 박살났다’로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한다.
<일당백>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하루 수입, 즉 일당(日當)이 백 만원 이상 되는 프로기사를 뜻한다. 1일 평균수입이 백 만원이 되려면 연간 수입은 3억 6500만 원을 올려야 한다.
2011년 기준으로 이에 해당하는 기사는 이세돌(7억 7400만 원), 박정환(4억 2000만 원), 최철한(4억 1500만 원) 등 딱 3명 존재한다. 이세돌은 ‘일당이백‘이다.
많다고? 하지만 이들 톱프로들이 지닌 초인적 능력에 비해 많은 건 아니다. 인기스포츠나 연예계 등 다른 동네엔 <일당백>은 우습고 <일기당천>, 즉 하루에 기천(幾千)만 원을 버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아닌가. 그래도 우리 서민들에게 일당백은 너무 부러버~.
<양두구육>
‘양사범이 두는 수는 9할이 육탄돌격!’ 무지무지 싸움바둑인 모양이다. ‘닥치고 공격’쯤 될까. 이런 화끈한 기풍은 우리 아마추어들에게도 인기 최고다.
그런데 양사범이 누구지? 그게 베일에 쌓여있다. 참고로 국내에 양씨 성을 가진 프로기사는 양상국 양재호 양건 양우석 등 모두 4명이 있다. 4지선다형. 선택은 자유.
<친박>
親朴? 여성정치인 박 머시기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뜻하는 거 아닌감? 그게 바둑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있다. 지난 해 연말 박정상 결혼식 때 참석했던 하객들이 바로 ‘친박’이었다.
그날 조훈현 양재호 최규병 등 고참기사들, 박정환 박영훈 등 같은 종씨들을 포함해 수 백 명이 운집했다. 부부가 함께 참가한 것으로도 모자라 축가까지 합창한 김효정프로는 ‘골수 친박연대’주도세력임이 드러났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박정상의 ‘중대 결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비이락>
까마귀가 어쩌구…배(梨)가 어쩌구…. 그런 거 아니다. 여기서 ‘오’는 일본의 고참기사 오다케, ‘이’는 한국바둑의 전설 이창호다.
<오비이락>이란 ‘오다케가 비틀면 이창호는 추락시킨다’는 뜻이다. 상대가 불리함을 모면해 보려고 격렬히 저항할 때 강자들은 조용히 맥점을 구사해 상황을 끝내버리지 않던가. 오다케 이사장님 죄쏭. @%*&*(#@@
<온고지신>
‘온소진과 고근태는 지금도 신동이다’ 옳거니! 두 기사는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 장래를 촉망받았던 수재들이었다. 지금도 계속 성장 중인 둘은 이제 머지않아 신동(神童)에서 동(童)자 떼고 신(神)으로 비상할 차비를 갖춰가고 있다.
<외유내강>
‘외국에 나가면 유(창혁)이, 국내에선 강(동윤)이 최고‘란 뜻이다. 뭐가 최고냐 하고 물어올 경우 ’말솜씨‘란 대답이 준비돼 있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한국 바둑계를 대표할 만큼 화술이 뛰어나다. 거의 본인들의 바둑실력에 육박할 정도니 최고수준 맞는 것 아닌가.
<장삼이사>
원래는 張씨네 셋째 아들과 李씨네 넷째 아들, 즉 평범한 사람을 가리키는 성어다. 하지만 장씨 3명, 이씨 4명을 패키지로 묶는 의미라고 우겨볼 참이다. 누가 고발하지는 않겠지.
한국의 장삼이사는 이세돌 이창호 이영구 이지현 & 장수영 장두진 장명한
중국은 李喆李康 李軒豪 李豪杰, 그리고 張立 張維 張學斌.
이상 양국 랭킹과 연령을 감안해 선정된 명단임. 자신이 빠진 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 있으면 실력으로 치고 들어오삼. 언제든 수정하겠음.
<중과부적>
‘중국은 과거부터 부숴야 할 적이다’ 물론 바둑에 한한 얘기다. 바둑 말고 다른 건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 맞다. 한국과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 바둑을 놓고 한 치 양보없는 팽팽한 접전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바둑전사들이여, 바둑에서만큼은 중국을 사정없이 쳐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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