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여관을 얘기할 때는 일엽 스님, 정월 나혜석, 고암 이응노... 이 세 사람을 떼어놓을 수 없다.
한때 정월 나혜석이 주석했고 이응노 화백이 머물렀으며 일엽 스님이 속가의 아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오는 곳이 바로 수덕여관이다. 여관 현판도 이 화백이 직접 쓴 것이다.
덕숭산자락에 수덕사일주문바로옆에수덕여관이있다.
질곡의세월을간직한수덕여관을지키던고암 이응노화백의전처인박귀희 여사는2001년2월24일한많은세상을떠나신 이후수덕사는 많은우여곡절끝에수덕사로소유권이이전되었다.초가집의그윽한운치나객수(客愁)가아니더라도,수덕여관에녹아있는애절한사연을알고난뒤라면누구나잠못이루고뒤척거리는밤을보내게된다.
수덕사 일주문 바로 왼편의 수덕여관. 주인 없는 빈집으로 방치된 지 5년여 만에 수덕사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수덕사(주지 법정)는 2006년 1월 16일 이응노 화백의 손자 이종진씨로부터 수덕여관을 증여받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17-1번지
덕숭총림수덕사앞일주문왼쪽작은개울건너에는누르스름한 초가지붕을 얹은수덕여관이있다.
겨울맞이 단장을 끝낸 수덕여관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수덕여관입구 -
이곳이한국미술계의거장고암이응로(1904 ~ 1989)화백이나이마흔살에수덕사에터를잡아둥지를틀고작품구상을하며머물렀던곳이다.이응노화백은1944년수덕여관을열고머물면서수덕사일대자연과풍광을화폭에담았다.
수덕여관이름처럼여관구실도하며수학여행온학생들이단체로묵었던곳이기도하다.현대문화예술의산실이자숱한사람들의인연이깃든곳수덕여관이우여곡절끝에지난해인2007년10월5일수덕사'선(禪)미술관'과'수덕여관'이라는이라는새문패를달고다시단장되었다.
수덕여관에는슬픈전설같은실제이야기가지금도고이간직되어있는 곳이다.
신여성이자여류화가였던 정월나혜석은1937년부터1943년까지말년을이곳에서보낸것으로알려져있다.
이곳에서나혜석은작품활동을하며비록 스님이되지는못했지만선승처럼수행자처럼단촐하고조용하게살았다.출가를못했지만승복을입으며무소유, 무애행을실천했다고전한다.충남홍성이고향이고,해강김규진문하에서그림에대한열정에불타고있던청년이응노에게는파리에서그림공부를하고돌아온나혜석은둘도없는선배이자스승을만나려자주수덕여관을들른다.그러다가두사람은함께이산속외진곳에서아예같이기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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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이며누나같은나혜석은이응로에게파리의환상을심어준다.누나처럼선생님처럼따뜻하게대해주던선배화가나혜석과의인연으로수덕여관에정이들어버린이응노는,1944년나혜석이이곳을떠나자아예수덕여관을사들인다음부인인박귀희에게운영을맡기고,6.25때에는피난처로사용하는등6년간살면서수덕사주변의아름다운풍광을화폭에옮긴다.나혜석으로부터꿈에그리던파리생활과그림이야기를들은이응노는1958년드디어21세연하의연인박인경(이후박귀희여사와이혼을하고박인경씨와결혼 :현재대전이응노미술관관장)과함께파리로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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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남은그의본부인박귀희여사가여관을운영하나글자그대로소박떼기청상과부가되어버리고만다.머물다미련없이떠나버린 두사람과는달리,박귀희여사는변치않는애정과절개로이국땅의남편을그리며수덕여관을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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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는수덕여관 복원을 기념해 고암 이응노 화백의 미공개 작품 20여점과 서찰, 낙관, 제자 금동원의 작품 등 4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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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동백림 사건 당시 이응노 화백이 잠시 머물며 화강암에 새긴 추상 암각화 2점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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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길어 마셨다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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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화백이 남긴 작은 바위쪽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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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이응노'라고 암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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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일주문을 향하던 중 바라본 수덕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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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수덕여관은 여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 충청남도에 의해 1989년 도(道) 지정 문화재기념물 103호로 지정되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05년 12월 수덕여관을 '보존해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