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 버섯돌이 황톳집
진흙이 빚어낸 친환경 공간
집을 짓는다고 하면 흔히 단단한 벽돌이나 돌, 나무를 쌓아 올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황토를 잘 반죽해서 쌓는, 매우 단순한 작업만으로도 ‘버젓한’ 집 한 채는 탄생된다. 어디 집의 탄탄함뿐일까.
40cm의 황토벽이 스스로 숨을 쉬니 아토피나 감기 걸릴 걱정이 없다. 김광수·황기순 부부는 20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접고 직접 지은 황톳집에서 오늘도 즐거운 귀농일기를 쓰고 있다.
화천 터 닦기 2년, 이제야 조금씩 시골 사람이 되어간다는 이 부부의 안빈낙도 찬가를 들어봤다.
김광수(51)·황기순(49) 부부에게 아파트는 닭장같은 삶이었다. 하지만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학비는 만만치 않았으며 직장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때가 왔다. 22년 장기근무를 했던 남편이 명예퇴직을 결심하면서 드디어 귀농작업에 들어간 것. 물론 아내 황기순 씨보다 김광수 씨의 입김이 더 셌지만 말이다.
20년 아파트 생활 청산하고 화천 생활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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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조명은 황톳집과 같은 색감을 유지하면서 포근한 느낌을 강조했다. 마치 처마 아래 달린 벌집 같다. [아래]집의 벽체는 오직 황토와 통소나무로 쌓았다. 집안에 들어가면 향긋한 솔향이 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톳집과 잘 어울리는 지게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거리다. |
남편을 위한 일생일대의 이벤트랄까요?”남편 김광수 씨는 명예퇴직을 하면서 1년 동안 본격적인 집짓기 준비에 들어갔다. 시골에 어울릴 만한 황톳집을 짓기로 결심하고는 자료도 알아보고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도 구했다. 화천에 터를 잡은 것은 김씨가 출장 때마다 이곳을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 때마침 화천군의 무료 집짓기 인력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전통집을 짓는다고 하자 군에서 건축인력을 지원 해주더군요. 어차피 황톳집을 지을 생각이었는데 잘 됐다 싶었죠. 집 짓는 데 요한 인력을 배정받아 약 1500만원을 절약할 수 있었어요. 재료비는 공짜로 퉁친 셈이죠.”
이러한 지원 덕에 화천군에는 17동의 전통가옥이 새로 둥지를 틀었다. 화천군전통황토집전수학교에 소속된 실습생들이 목재비를 받아 물품을 구입하고 팀을 짜서 시공까지 도와준 것. 이렇게 인력 지원을 받아 당초 예상했던 공사비의 30~40%까지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처음 집을 짓는 사람에겐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니 여러모로 이득이 많다.
남편이 실습생들과 손발을 맞추는 동안 아내는 세집 살림에 정신이 없었다. 딸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아들은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남편은 황톳집을 짓겠노라며 화천에서 떠나질 아서다. 자연스레 한 가족 세살 림이 되어버린 셈이다.
산자락에 둥지 튼 버섯돌이 황톳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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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황톳집은 천장이 높은 본채와 2층으로 구성된 별채로 이뤄져 있다. 두 부부와 노모의 생활공간인 본채는 방 두 개와 부엌으로 이뤄져 있는데, 거실 천장을 높게 만들어 최대한 시원한 느낌을 더했다. 별채는 관광객을 위한 펜션으로 이용하기 위해 층마다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특히 2층 방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을 볼 수 있게 천창을 만들었다. 또 찬바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모든 문은 이중으로 설계했다.
지금은 ‘버젓한’ 집 모양새를 갖췄지만, 사실 두 채의 황톳집은 김광수 씨의 손에서 탄생된 진흙 창작품이다. 보통 황토로 집을 짓는다고 하면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벽을 쌓는 것이 일반적인 건축방법. 하지만 김광수 씨는 어떤 기둥도 없이 황토를 반죽해서 손으로 떼어내 층층이 쌓아 올렸다. 돌과 콘크리트로 기단을 쌓고는 황토로 40cm 두께에 달하는 벽을 만들어
갔다. 황토를 쌓다가 그 위에 매끈하게 깎은 소나무를 가로로 올리고, 다시 황토를 쌓는 방식으로 집을 완성한 것. 설계도도 따로 없었다. 종이에다 밑그림을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 상의해 집의 형태를 잡았다. 그래서 이 부부의 집은 네모상자가 아니라 동그라미 형태다. 그것도 나무껍질로 지붕을 만들어 멀리서 보면 마치 버섯돌이처럼 생겼다.
“집을 짓는 데 들어간 황토만 덤프트럭 10대 정도 됐을 거예요. 그 황토로 미술작업을 하듯이 반죽하고 쌓기를 반복했죠. 그렇게 작업할 때는 비가 제일 싫어요. 황토와 비는 적이 거든요. 후드득 빗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비닐을 덮어줘야 했죠.”
1년 동안 집을 지은 사람은 김광수 씨를 비롯해 실습생 세 명. 구입한 땅에 적절한 황토가 있어 재료비는 목재비와 내부구조를 만드는 비용 정도였다. 그래도 만들면 만들수록 들어가는 게 돈인지라, 처음엔 꼼꼼히 기록했던 비용장부도 나중에는 아예 없애버렸단다. 어림짐작으로 따져보면 본채와 별채를 모두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1억 5000만원 정도다.
황톳집을 봄에 지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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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설계도도 없이, 그것도 보자가 황톳집을 지었다고 하면 ‘누구나 짓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황톳집은 잘못 지으면 집 자체가 ‘흘러내리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황톳집을 봄에 지어야 하는것도 이 때문. 가을에 집을 지으면 겨울에 냉동상태로 있다가 봄이 되면 주르륵 흘러내려서다. 인근 동네에도 흘러내린 황톳집이 한 채 있단다. 자연의 재료를 이용하는 만큼 자연의 순리를 잘 따라야 하는 것이 황톳집의 원칙이다.
김광수 씨가 자신의 집을 ‘미완성’ 운운하는 것도 황톳집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 손을 봐줘야 하기 때문에 완전하게 자리를 잡으려면 10년은 있어야 한단다. 특히 황토와 나무 사이에 틈이 벌어져 가을철에는 메우는 작업을 꼭 해줘야 한다.
이런 ‘보충작업’만 끝난다면 황톳집은 21세기 최고의 웰빙 집이다.
“황토는 숨을 쉰다고 하잖아요. 스스로 통풍도 시키고 습도 조절도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이곳에 이사 오면서 한번도 감기에 걸리지 았어요. 환절기도 거뜬히 넘기죠. 당연히 피부에도 좋죠. 아토피가 있는 조카도 가끔 와서 자고 갈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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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황토집의 마무리는 나무껍질로 쌓은 지붕이다. 여기에 항아리와 고목으로 굴뚝과 정수리 부분을 장식해 포인트를 줬다. [우]지붕은 통 소나무를 연결해 만들었다. 인테리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소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특징. |
황토에 통소나무를 곁들인 덕분에 집안에는 언제나 향긋한 솔향이 퍼진다. 천연 방향제인 셈이다. 무엇보다 황기순 씨는 황톳집에 살면서 남편이 참 유해졌다고 귀띔한다. 아파트에 살 때는 신경질도 자주 부리고, 매사에 예민하게 굴었지만 지금은 시골 사람이 다 됐는지 얼굴이 참 밝아졌단다. 아마도 나쁜 기운을 없애는 황토가 자정기능을 발휘한 덕분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원생활에는 베짱이보다 개미가 어울린다“시골에 살면서 편하고 쉽게 살려고 하면 안 돼요. 자연이 주는 기쁨과 더불어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거든요. 곤충들과 동거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거미, 귀뚜라미, 개미가 황토와 나무 틈새로 가끔 들어오기도 하거든요. 이제는 아무렇지도 지만 기에는 신경이 많이 쓰였죠.”
시골은 자고 일어나면 ‘일’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웃음 섞인 하소연. 아침에 보면 마당의 풀이 부쩍 자라 있고, 집 이곳저곳에는 거미가 새집을 짓는다. 개와 닭 모이도 줘야 하고, 날씨 봐가면서 틈틈이 농작물도 손봐야 한다. 사람들은 무릉도원 꿈꾸며 여유롭게 전원생활을 즐긴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그렇지도다. 오히려 도심에서 생활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다.
“지인들이 찾아오면 항상 하는 질문이 있어요. 황톳집에서 사는 건 좋지만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고요.
자신들도 전원생활을 하고는 싶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선뜻 실천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이들 부부도 ‘먹고 살’걱정을 안한 건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김광수 씨가 직장생활 때부터 애정을 가졌던 분재다. 나무 분재를 기본으로 천마도 기르고 머루도 재배한다. 여름 한달 장사지만 용돈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펜션도 운영한다. 아직 큰 수익은 못 내지만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이라고.
“손님이 온다고 해서 머루를 따려고 했는데, 얼마전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모두 망쳐버렸지 뭐예요. 먹음직스럽게 달렸던 머루의 반은 새들이 가져가고, 반은 날씨가 훔쳐가네요. 우리 부부가 먹은 거라곤 몇 송이 될까 싶어요. 하하.”
이제 곧 가을이면 황톳집을 감싸고 있는 용화산은 오색 빛깔로 변신을 한다. 아직 귀농 2년차에 불과한 이 부부에게 사시사철 자연의 변화는 여전히 신비롭기만 하다. 얼마 전에는 청정지역에서만 산다는 반딧불이가 번쩍번쩍 금광을 냈다며 자랑을 한다. 그 소박한 자연의 선물이 이 부부가 흙집을 짓고 귀농하면서 얻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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