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립국가
국민여러분!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진 물적, 인적 자원에 기초해서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순환질서에 부합하는 삶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립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도 합니다.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는 자립국가 목표는 적절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경제적 효율성을 너무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가 발전했고, 앞으로의 경제발전은 자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발전이라야 하기 때문에도 자립국가를 국가발전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의 여러 곳에서 강조한 바 있지만 세계화를 추진하되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세계화여야 하며, 경제통합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마저 훼손할 우려가 큰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것은 체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자립국가’라고 해서 외국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하고 독자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외국과 많은 경제교류를 하되 기본적으로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도 국가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외국과의 경제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자급자족경제(autarkie)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립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것은 경제적인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영위할 수 있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남에게 종속되어 있어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립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안에서 나는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민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특히 환경문제의 해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립국가가 되려면 자원재생(Recycling)을 잘 해야 하겠는 바, 이것은 우리의 삶이 우주의 순환질서에 부응하는 삶이 되도록 만들어 가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립경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보통 다음 몇 가지 반론에 부딪칩니다. 하나는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인 식량과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에서 무슨 수로 자립경제를 실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화시대 곧 상품과 자본과 정보와 기술과 인력 등의 국제적 이동이 일상화하는 지구촌시대를 맞고 있는 터에 자립경제를 실현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70%가 넘는 터에 과연 자립국가 정책이 타당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앞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아닙니다. 국토가 좁고 일부 광물자원이 부족하며 특히 석유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원이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족함을 이제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립경제를 주장한다고 해서 수입이나 수출을 하지 말자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수입과 수출을 하더라도 남의 나라에 의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좌우되게 해서는 안 되겠고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조절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가령 요즘 경제가 어려운 것과 관련하여 미국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미국경제가 나아지면 한국경제도 나아질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안 되겠고 또 이런 식의 태도를 가져서도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서 제기된 몇 가지 반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 봅시다. 부존자원이 부족하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식량과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만 이것도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식량의 경우 완전히 자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이는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러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식량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25% 정도의 식량만 자급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더욱이 식량자급률이 25% 정도인 나라에서 국토를 놀리고 있는 곳이 엄청나게 많거니와 심지어 쌀 감산정책을 채택하는가 하면 휴경하는 경우에는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이것은 모순도 너무 큰 모순입니다. 한마디로 식량자급률을 높일 생각은 전혀 없이 오히려 외국농축산물을 수입해서 돈이나 벌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전공학 등의 과학기술도 발전했지만 영농기자재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습니다. 천수답의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전천후 농업이 가능해서 날씨나 지형, 지질을 초월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생산비와 외국농산물과의 경쟁력인데 이 부문은 농업생산시설의 사회간접자본화와 사회보장제도의 실시를 통해 농산물가격이 대폭 인하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이 부분은 졸저 ‘신문명 경제시론’<신문명 2001> 참조)
제일 큰 문제는 에너지 문제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에너지의 주종이 석유인데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고, 그래서 에너지원의 97% 정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의 자립을 무슨 방법으로 달성할 수 있겠느냐 하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너지의 자급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 에너지원의 97%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를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도시국가도 아니고 상당한 규모의 국토와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에서 에너지원의 97%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러고도 개발 가능한 태양열, 수력, 풍력, 조력 등의 에너지를 비용의 문제 때문에 개발하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너지원의 해외 의존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가 있으니 에너지 과다소비형 생활구조입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대형건물은 물론 소형건물까지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게 지어놓고 냉난방 모두들 에어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에너지의 해외의존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겨울에도 내의를 입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창문을 하나도 없는 건물들을 지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저주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에너지 전체를 자급해야 한다거나 석유를 수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에너지의 과도한 대외의존이 문제라는 것이고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의 이유로 석유가격이 폭등하면 나라경제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마비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너지의 자급도를 높이기 위해 획기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가령 태양열과 풍력은 우리나라에서 좋은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양열의 경우 아파트 옥상 면적만큼의 집열기를 설치하면 15층 아파트 전체의 온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광주광역시에서 태양열에너지 개발을 위해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데 기대해 볼 만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려고 해도 경제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경제성을 따지니까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석유와 LNG 등을 수입해서 쓰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드나 만약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등의 이유로 석유나 LNG 값이 폭등할 경우에는 경제성으로 따지더라도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유리할 수 있는데, 우선 비용이 적으니까 거기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유가가 폭등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경제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가 파탄에 직면하는 것은 물론 한국사회 전체가 마비될 것입니다. 경제성을 따진다면 이런 위기상황까지를 감안해서 경제성을 따져야 합니다. 즉 석유 1배럴당 30 달러일 때의 경제성이 아니라 50 달러 또는 100 달러일 때의 경제성을 따져야 할 것입니다. 대체에너지의 경우 생산비가 10배 20배 비싸다면 생산비 때문에 상용화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 생산비의 경우, 석유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의 경우 1KWH당 60원 정도 되는 데 비해 수력발전은 1KWH당 70원, 풍력발전의 경우는 1KWH당 90원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은 원유가격이 30 달러 정도일 때의 비용이고 만약 원유가격이 50 달러, 100달러가 된다면 화력발전의 비용이 수력발전이나 풍력발전보다 훨씬 더 비싸질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차이는 차이라 할 것도 없고 오히려 대체에너지가 훨씬 더 경제성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석탄의 경우 열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내산을 사용하지 않고 호주산을 수입해서 쓰고 있는데, 이것도 단견에 기초한 정책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어차피 석유는 40년 정도만 지나면 전 세계적으로 고갈되게 되어 있고, 천연가스는 60년, 우라늄은 70년 정도 지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석탄의 경우 채굴 가능한 햇수가 200년 정도 된다고 하나 석탄이 전 세계의 에너지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2,30년 안에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가 마비될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미 외국의 경우에는 태양열, 풍력, 바이오 에너지 등이 상용화 단계에까지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태양열, 풍력, 파력(파도)에너지가 상용화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의 미온적인 정책으로 그 개발이 더딜 뿐입니다. 대체에너지의 경우에서 우리나라만큼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나라는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태양열의 경우 한국만큼 청명한 날이 많은 나라가 드물며, 풍력에너지의 경우도 한국만큼 입지조건이 좋은 나라는 드물 것입니다. 파도의 힘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파력발전의 경우도 우리나라는 아주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80년대 초반 풍력발전으로 1KWH의 생산비가 30센트(약 400원) 정도였는데 2000년 들어서는 KWH당 4센트(약 50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풍력발전의 경우는 바람의 속도가 조금만 더 빨라져도 전력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는다고 하니 시설만 갖추어 두면 공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청정에너지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름이 54m짜리 풍력발전기 1대면 1000KW의 전기를 생산하는데, 풍속이 초속 4m에서 5m로 늘면 전력 생산량은 2배로 는다고 하니 지름 54m짜리 풍력발전기 1000대만 설치하면 무려 100만KW 이상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마침 우리나라는 풍력발전의 입지가 좋아 풍력발전 잠재량이 무려 6억 6천만 MWH(메가와트시)나 되어 이 가운데 10%만 개발하더라도 우리나라 전기소비량의 약 30%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제주도 지역과 강원도 내륙의 산간지역, 서해안과 동해안은 입지조건이 대단히 좋다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관심에 달렸습니다. 석유소비량이 세계에서 6위인 데다 석유수입량은 세계에서 4위입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온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나 에너지 다소비구조를 갖고 있는 한 대체에너지인들 아무리 개발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에너지도 자립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한편으로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와 에너지낭비형 생활구조를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중요합니다. 10여 년 전에 이미 대체에너지의 개발을 통해 2001년까지 에너지 자급률을 20%까지 높이기로 했었으나 그 후 예산타령을 하면서 그 비율을 축소해서 지금 에너지 자급률은 겨우 1.5%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다른 데는 예산을 물 쓰듯 쓰면서 대체에너지와 관련해서는 3000억 원 정도의 예산만 투입하고 있으니 이러고서는 대체에너지의 개발을 통한 에너지 자급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제가 에너지자급 문제와 관련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한 것은 에너지의 자급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는 에너지조차도 자급이 가능할 정도이니 다른 부문은 더욱더 자급이 가능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실상 불가능이 없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학기술적으로 개발과 생산이 가능하다고 해서 무엇이든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자제해야 할 일이 많을 뿐 불가능해서 못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수출을 많이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듯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동안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온 것이 사실입니다. 수출이 갖는 긍정적인 효과는 대단히 큽니다. 우리나라 이외에 다른 나라들도 수출을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래서 어느 나라나 무역흑자가 많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무역흑자를 높이기 위해 국력을 모두 쏟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데 너무 몰두할 때는 지나갔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물론 아직도 우리나라는 무역흑자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발전한 기술을 앞세워 중국이나 러시아 등으로 수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제 수출에 의존해서 고용과 소득을 창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수출을 하는 만큼 수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렇게 하는 경우 고용도 소득도 상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한 범위에서 수출도 수입도 하되 근본적으로 수출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민족경제 자립의 기초 위에서 경제를 운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품과 자본, 정보, 기술, 인력 등의 국제적 이동이 일상화됨으로써 국경의 의미조차 약화되는 세계화시대에 자립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냐 하는 반론이 있겠으나, 그런 반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구촌이 되든 세계화가 되든 나 또는 우리라고 하는 정체성이 없는 삶은 무의미한 삶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정체성이 있는 것이 상대방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발전에 도움을 줍니다. 세계화에 적극 응하되 민족적 정체성을 정립하고 있어야 올바른 세계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 민족적 정체성을 갖겠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다 고유한 정체성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해야 오히려 세계의 조화로운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고 개개인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은 대단히 의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각 나라들이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자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해야 세계평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각 나라들이 자립국가를 지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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