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부터 여성의 성해방 운동이 시작되었고 여성들에게 정치적, 사회적인 지위가 부여되기 시작하면서 마치 프리섹스가 성해방의 모색이고 중점이 되기 시작했다. 성의 자유는 프리섹스가 될 수 없다. 즉 프리섹스와 자유는 동일하지 않다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싶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성의 보수적인 교육이 자아의식 속에 형성되면서 섹스에 대한 두려움과 성해방이 주는 즐거움이 이중적인 작용을 한다고 생각된다. 만일 프리섹스주의자들이 성관계를 하면서 성병이나 에이즈를 걱정한다면 그는 프리섹스 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프리섹스의 실체 속에 드러나게 된다. 성 개방과 성 자유의 돌파구가 프리섹스가 아니라 억압된 성에 대한 자율적인 의지와 성적인 자아의식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성 자유의 물결은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들을 생성시켰다. ‘원조 교제’ ‘성 상납’ ‘영계’ ‘자유부인’ ‘불륜’ ‘엔조이’ ‘천연기념물(순결한 여성)’ 등 이런 것들이 진정한 성 해방과 성의 자유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리섹스는 결혼을 하지 않는 남녀가 자유롭게 성을 즐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프리섹스가 갖는 의미는 사랑하는 관계의 두 남녀가 자유롭게 성을 즐기고 받아들일 때 진정한 프리섹스인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을 한 부부사이에는 프리섹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프리섹스는 사랑이 주인이 되어 서로간의 이성이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섹스를 말하는 것이다. 부부관계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성관계를 거절한다면 성관계를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프리섹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합의의 진정한 자유의사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섹스의 실체는 강요된 성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는데 있다. 만일 결혼을 한 유부남이나 유부녀가 합법적인 관계가 아닌 다른 상대와 프리섹스를 한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며 가정은 파괴되고 만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부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무에서 벗어나거나 책임을 질 수 없는 일들을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프리섹스란 간판을 내걸고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전력 질주하는 영화나 다름이 없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법이 미미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강간에 대해서는 엄한 벌로 처벌을 하지만 간통에 관해서는 어떠한 법적 규제가 따르지 않는다. 미국의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가면서 이혼율은 점점 급증하는 추세라 할 수 있는데 결혼 한 부부 중 두 쌍에 한 쌍이 이혼을 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세 쌍의 부부 중에 두 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 사회적인 가치관이 변화되면서 잘못 된 프리섹스의 물결은 획기적인 피임약의 개발과 미혼모 여학생을 위한 탁아소 운영, 하교 길 남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누어 주는 진풍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프리섹스의 물결은 인명경시 풍조와 함께 낙태를 성행시켰고 그 무서운 에이즈의 공포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성에 대한 가치 기준을 두고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기 전데 우리가 살아오면서 접한 문화 중심의 인간관계와 가정교육, 그리고 사회적인 환경이 잠재적으로 인식되어지는 범주안의 생활태도와 선택의 기준 그리고 취향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올바른 성의 가치 기준과 프리섹스의 실체를 파악하여 아름다운 성생활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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