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人法]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채는 법
좋은 글귀 / 2005. 1. 3. 14:09
[觀人法]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채는 법
『論語』「爲政篇 第二」10章
子曰 :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哉, 人焉?哉!」
자왈 :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무엇에 마음이 동해서 움직이는 지 보아라. 또 어떤 경로를 거쳐 해 나가는지 관점을 세워 찬찬히 들여다보아라. 그리고 종국에는 무엇에 만족해 멈추는 지 잘 살펴보거라. 그 이의 멈추어 옮기지 않는 것까지 관찰하여 파악하였으니 그 자신의 속내를 어찌 드러내지 않고 숨길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찌 혼자 꿍꿍이속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앞의 첫 세 마디를 들여다보자. 문두에는 시?관?찰(視?觀?察)이 짝을 이루어 나오고 문미에는 이?유?안(以?由?安)이 짝을 이루어 나오고 있다. 얕은 곳에서 깊은 곳(淺→深)으로 진행되는 느낌이 든다.
視?觀?察
視는 영어로 see, 즉 ‘바라본다‘로서 별로 의도하지 않아도 눈에 턱 보이는 것을 말한다. 觀은 입장(viewpoint, standpoint, 見地)을 세워 보는 것을 말한다. 자세히 본다는 뜻이다. 영어의 look at 이나 view 해당되겠다. 처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 내 눈에 들어오거든 그 이의 마음을 動하게 한 발단이 무엇인지를 본 다음 그 일이 어떤 경로를 거쳐가는지 분석의 틀을 세워서 의도적으로 보라는 말이다. 察은 살필 찰로 훈한다. 영어로는 investigate, stare at...으로 상대방의 최종 입장을 확인하여 조서를 꾸미는 수사관의 눈길 같은 시선이다.
以?由?安
以는 써 이로 훈한다. 주자는 以, 爲也 (하다, do)로 보았고 『何晏集解』에서는 以, 用也(쓰다, function, use)로 보았다. 논어해석의 월드 챔피언인 자랑스런 朝鮮의 호프 茶山선생은 以, 因也(원인, cause)로 보았다. 나는 써 이라는 훈 그대로 ...의 용도가 발생하였을 때 즉 그것이 원인(root cause)이 되어 촉발되는 의도적으로 하게되는 作爲 즉 make the move로 보았다. 통상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행동이 나오게 되는 데 이러한 행동은 그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由는 모두 비슷하게 經也로 보았다. process이고 경로이다. 말미암을 유라고 훈하는데 우리말에 經由라는 말을 연상하면 딱 들어맞겠다. 일이 어떤 경로를 밟아서 진행되는 가를 보는 것을 말한다. 安은 편안할 安자의 意動詞로서 ....을 만족스럽게 여기며 선택해 눌러앉고 더 옮겨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茶山, 止而不遷也. 56쪽 및 413쪽『國譯 與猶堂全書』(經集 II?論語古今註) 여강출판사, 1989.)
존재의 포근한 품에 안겨서 나른해 지는 것을 말한다. shift from tension to reconciliation(긴장에서 이완으로의 전이)이라 할 수 있겠다.
其所는 ‘어떤 이(其)가 ....을 해나가는 바’란 뜻이다.
이런 어구해석을 토대로 해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해석해 보자.
視其所以
살다가 보면 주변의 어떤 이(其)가 동작(作爲, make the move)을 보이거든 어떤 계기에 마음이 일어나서 그러는지 잘 보아라(視).
觀其所由
그르거든 너 자신이 어떤 입장을 세워서 찬찬히 보거라(觀). 그 이가(其) 어떤 경로(由)를 밟아서 그 일을 해나가고 있는지(所) 말이다.
察其所安
그런 뒤에 개 코를 가진 수사관같이 그 자가(其) 어떤 일에 만족해 맘을 푹 놓고 퍼더버리고 앉아 그 성취를 즐기는 지(安) 분석하여 그 유형을 정리해 보아라. 그런 수련을 자주 해 보면 사람의 마음이 일어나는 그 일의 단초에 임하는 자세만 보고서도 사람 됨됨이를 죽 꿰뚫어 알 수 있느니라. 察人(찰인)을 통해 觀人法(관인법)이 완성되는 것이다. 『태조왕건』에서의 궁예의 觀心法보다 훨씬 더 과학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人焉?哉
그러면 어찌(焉=何 이다. 때로 장소를 묻는 의문대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에다 숨기겠느냐는 해석보다 어찌 숨길 수 있겠느냐? 가 더 포괄적이고 근원적이며 직접적이며 좋은 해석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人) 너의 통찰을 벗어나 너를 속일 수(?, 감출 수) 있겠느냐? ?는 孔安國이 ?也, 匿也(닉야)로 주해한 뒤론 은닉(隱匿)이란 뜻으로 큰 이견이 없이 통용되어 오고 있다. 哉는 反問의 語氣를 표현하는 어기 조사로 쓰이고 있다. 人焉?哉! 가 한 번 더 나온 것을 朱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重言以深明之
거듭 말한 것은 그 말하고자 한 바를 더욱 깊이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입장을 정리한 다음 다산 정약용의 탁월한 해석을 들여다보자.
“ 대체로 사람을 살펴보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모름지기 그 일의 처음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살피고, 중간에는 어떠한 길로 經由해 나아가는 가를 보며, 맨 끝에는 어느 곳에 그쳤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사람들은 그 정상(情狀)을 숨길 수 없는 법이다.”
(茶山, 56쪽, 413쪽『國譯 與猶堂全書』(經集 II?論語古今註) 여강출판사, 1989.)
「凡觀人之法, 每作一事. 須觀其始所因者何放, 中所經者何道, 終所止者何處. 則人無所匿其情也.」
『論語』「爲政篇 第二」10章
子曰 :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哉, 人焉?哉!」
자왈 :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무엇에 마음이 동해서 움직이는 지 보아라. 또 어떤 경로를 거쳐 해 나가는지 관점을 세워 찬찬히 들여다보아라. 그리고 종국에는 무엇에 만족해 멈추는 지 잘 살펴보거라. 그 이의 멈추어 옮기지 않는 것까지 관찰하여 파악하였으니 그 자신의 속내를 어찌 드러내지 않고 숨길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찌 혼자 꿍꿍이속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앞의 첫 세 마디를 들여다보자. 문두에는 시?관?찰(視?觀?察)이 짝을 이루어 나오고 문미에는 이?유?안(以?由?安)이 짝을 이루어 나오고 있다. 얕은 곳에서 깊은 곳(淺→深)으로 진행되는 느낌이 든다.
視?觀?察
視는 영어로 see, 즉 ‘바라본다‘로서 별로 의도하지 않아도 눈에 턱 보이는 것을 말한다. 觀은 입장(viewpoint, standpoint, 見地)을 세워 보는 것을 말한다. 자세히 본다는 뜻이다. 영어의 look at 이나 view 해당되겠다. 처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 내 눈에 들어오거든 그 이의 마음을 動하게 한 발단이 무엇인지를 본 다음 그 일이 어떤 경로를 거쳐가는지 분석의 틀을 세워서 의도적으로 보라는 말이다. 察은 살필 찰로 훈한다. 영어로는 investigate, stare at...으로 상대방의 최종 입장을 확인하여 조서를 꾸미는 수사관의 눈길 같은 시선이다.
以?由?安
以는 써 이로 훈한다. 주자는 以, 爲也 (하다, do)로 보았고 『何晏集解』에서는 以, 用也(쓰다, function, use)로 보았다. 논어해석의 월드 챔피언인 자랑스런 朝鮮의 호프 茶山선생은 以, 因也(원인, cause)로 보았다. 나는 써 이라는 훈 그대로 ...의 용도가 발생하였을 때 즉 그것이 원인(root cause)이 되어 촉발되는 의도적으로 하게되는 作爲 즉 make the move로 보았다. 통상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행동이 나오게 되는 데 이러한 행동은 그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由는 모두 비슷하게 經也로 보았다. process이고 경로이다. 말미암을 유라고 훈하는데 우리말에 經由라는 말을 연상하면 딱 들어맞겠다. 일이 어떤 경로를 밟아서 진행되는 가를 보는 것을 말한다. 安은 편안할 安자의 意動詞로서 ....을 만족스럽게 여기며 선택해 눌러앉고 더 옮겨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茶山, 止而不遷也. 56쪽 및 413쪽『國譯 與猶堂全書』(經集 II?論語古今註) 여강출판사, 1989.)
존재의 포근한 품에 안겨서 나른해 지는 것을 말한다. shift from tension to reconciliation(긴장에서 이완으로의 전이)이라 할 수 있겠다.
其所는 ‘어떤 이(其)가 ....을 해나가는 바’란 뜻이다.
이런 어구해석을 토대로 해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해석해 보자.
視其所以
살다가 보면 주변의 어떤 이(其)가 동작(作爲, make the move)을 보이거든 어떤 계기에 마음이 일어나서 그러는지 잘 보아라(視).
觀其所由
그르거든 너 자신이 어떤 입장을 세워서 찬찬히 보거라(觀). 그 이가(其) 어떤 경로(由)를 밟아서 그 일을 해나가고 있는지(所) 말이다.
察其所安
그런 뒤에 개 코를 가진 수사관같이 그 자가(其) 어떤 일에 만족해 맘을 푹 놓고 퍼더버리고 앉아 그 성취를 즐기는 지(安) 분석하여 그 유형을 정리해 보아라. 그런 수련을 자주 해 보면 사람의 마음이 일어나는 그 일의 단초에 임하는 자세만 보고서도 사람 됨됨이를 죽 꿰뚫어 알 수 있느니라. 察人(찰인)을 통해 觀人法(관인법)이 완성되는 것이다. 『태조왕건』에서의 궁예의 觀心法보다 훨씬 더 과학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人焉?哉
그러면 어찌(焉=何 이다. 때로 장소를 묻는 의문대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에다 숨기겠느냐는 해석보다 어찌 숨길 수 있겠느냐? 가 더 포괄적이고 근원적이며 직접적이며 좋은 해석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人) 너의 통찰을 벗어나 너를 속일 수(?, 감출 수) 있겠느냐? ?는 孔安國이 ?也, 匿也(닉야)로 주해한 뒤론 은닉(隱匿)이란 뜻으로 큰 이견이 없이 통용되어 오고 있다. 哉는 反問의 語氣를 표현하는 어기 조사로 쓰이고 있다. 人焉?哉! 가 한 번 더 나온 것을 朱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重言以深明之
거듭 말한 것은 그 말하고자 한 바를 더욱 깊이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입장을 정리한 다음 다산 정약용의 탁월한 해석을 들여다보자.
“ 대체로 사람을 살펴보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모름지기 그 일의 처음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살피고, 중간에는 어떠한 길로 經由해 나아가는 가를 보며, 맨 끝에는 어느 곳에 그쳤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사람들은 그 정상(情狀)을 숨길 수 없는 법이다.”
(茶山, 56쪽, 413쪽『國譯 與猶堂全書』(經集 II?論語古今註) 여강출판사, 1989.)
「凡觀人之法, 每作一事. 須觀其始所因者何放, 中所經者何道, 終所止者何處. 則人無所匿其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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