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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意事必成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뜻을 품고 있으면 이룰수있다 010-7641-1981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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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뿌리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빛깔과 느낌입니다.

얼굴이 밝게 빛나고
웃음이 가득한 사람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어둡고 늘 찡그리는 사람은
쉽게 좌절합니다.

얼굴은 마음과 직결되며
마음이 어두우면 얼굴도 어둡습니다.

마음이 밝으면 얼굴도 밝습니다.
이는 행복하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속에 꿈과 비전을 간직하면
행복에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목 위에서부터 출발하여
얼굴에 나타나는
미소나 웃음은 예외입니다.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얼굴의 뿌리,
웃음의 뿌리는
바로 마음입니다.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 |
학문(學問)으로서의 유교(儒敎)와 유학(儒學)

한반도 2천년 정신사의 저변에는 때로는 풍류(風流)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러나 정체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든 고유한 어떤 사상의 맥(脈)이 관류하고 있다. 나는 이를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전통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의 정신사는 외래사상인 불교가 천년을 주도하고, 불교와 유교가 함께 오백년을 주도하고, 유교가 오백년을 주도하고, 기독교가 백년을 주도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서구 종교인 기독교와 서구의 학문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서구의 학문이 유일의 보편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다. 서구의 ‘science'에 대한 번역어로서의 학문이라는 개념이 있기 2천여 년 전부터 유교에서는 학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배움[學]’과 ‘가르침[敎]’, 두 글자의 어원이 동일하다

유교는 종교인가? 학문인가? 유교라는 명칭이 맞는가? 유학이라는 명칭이 맞는가? 최근에는 임계유 주편의 『유교는 종교인가』1,2(금장태·안유경 역, 지식과 교양)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하였지만 유교연구자로서 흔히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유교라고 부르면 종교이고 유학이라고 부르면 학문을 가리킨다고 한다.

한자에서 ‘교(敎)’라는 글자와 ‘학(學)’이라는 글자는 어원이 동일하였다. 『서경』「설명하(說命下)」편에는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배우기를 염두에 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덕이 닦이게 된다[惟斅學半 念終始典于學 厥德修罔覺]”고 나온다. 가르침을 의미하는 ‘효(斅)’자는 ‘학(學)’자에 ‘복(攴)’부가 추가된 것을 알 수 있다.

백천정(白川靜)의 『자통(字統)』은 ‘학(学)’, ‘학(學)’, ‘교(斅)’는 원래 동일한 글자라고 밝히고 있다. ‘교(敎)’자가 ‘학(學)’자에 ‘복(攴)’부를 붙여 독립하며 두 글자는 가르침과 배움의 의미로 분리가 되었다고 한다. 가르침과 배움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실시되었기 때문에 ‘학(學)’자의 원래 의미는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실시되는 학교를 의미하였다는 설명까지 더하고 있다. ‘교(敎)’와 ‘학(學)’은 어원이 같은 글자로서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가르침이며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배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교는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며 유학은 배우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다.

육경(六經)엔 가르침[敎]이, 사서(四書)엔 배움[學]이

가르침과 배움으로서 유학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도(道) 곧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가르침과 배움이다. 인간이 인간다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에게 배우는가? 선생에게 배워야 한다. 그러면 최초의 선생은 누구인가? 유학은 육경의 내용을 삶의 길에 대한 스승으로 존중한다.

육경은 요순(堯·舜)으로부터 서주(西周) 말기까지의 고대의 정치와 역사와 점술과 시와 음악과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유학은 이를 고대 선왕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육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기록인 『상서』와 음악의 집대성인 『시경』이다. 『상서』에는 ‘교(敎)’자가 24회, ‘학(學)’자가 7회 나오며, 『시경』에는 ‘교(敎)’자가 10회, ‘학(學)’자가 1회 나온다. 『주역』에도 ‘교(敎)’자는 5회, ‘학(學)’자는 1회 나올 뿐이다. 제왕의 정치를 기록한 육경의 내용은 가르침이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와 유학을 굳이 구별한다면 육경의 내용은 유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논어』에는 ‘교(敎)’자가 7회, ‘학(學)’자가 65회, 『맹자』에는 ‘교(敎)’자가 35회 ‘학(學)’자가 33회 나온다. 왕으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학자와 선생으로서의 삶을 산 공자와 맹자의 경우에는 유교는 배움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가르침으로서의 유교가 배움으로서의 유학으로 정립되는 것은 공자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好]”로 시작되는 『논어』는 공자의 삶과 가르침을 통한 학문의 즐거움과 성취를 보여주는 책이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으로 시작하여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는 공자의 삶은 도를 알고, 좋아하고, 즐기면서 “공부에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즐거워 근심도 잊고 늙는 줄도 몰랐다[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는 배움의 삶이다. 공자에 의하여 유학이 학문으로 정립되지만, 『논어』에는 아직 ‘학문(學問)’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학문(學問), 인격완성과 이상적 천하 건설을 목표로

학문이라는 단어는 공자를 가장 존경한 두 인물인 맹자(孟子)와 순자(荀子)의 저술에서 처음 등장한다. 『맹자』에 2회, 『순자』에 4회 나온다. 맹자 순자를 거쳐 유학은 제자백가의 사상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맹자』에는 이렇게 나온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라가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고 찾지 않으니 슬프다. 학문의 방법은 달리 없다. 그 놓친 마음을 찾는 것일 따름이다[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弗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공자의 가르침을 인간의 본성의 측면에서 계승함을 알 수 있다.

『순자』는 「勸學篇」으로 시작되며 『맹자』에서 보다도 학문이 더욱 강조된다. 순자는 “선왕이 남긴 가르침을 듣지 못하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不聞先王之遺言 不知學問之大也]”고 하여 선왕이 남긴 말과 업적이라는 객관적인 유물을 강조하였다. 맹자와 순자 이후 유학은 학문으로 계승 발전되며 동아시아 사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예기』 학기편에 나오는 “배운 뒤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뒤에 곤란함을 안다[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는 말을 음미하며 유학자들은 교학을 통하여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리를 터득하고 힘을 얻었다,

교학의 체계로서의 유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의 인격완성과 이상적 천하의 건설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유학의 이와 같은 과제가 자연과 인간의 진리에 대한 인식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과학에 의해서 획득되는 진리가 자연과 인간의 유일한 진리일 수는 없다. 유학자들은 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인간은 지혜가 밝아져 진리를 인식하게 되고, 기질은 강건하게 되어 진리를 실천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이 광 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 |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외로울수록 바쁜척 합니다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불안해 합니다

나는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변화를 바라지만 안정도 좋아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내가 실패 하는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 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미워할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 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 |
난초야, 미안해

1월이 끝나갈 무렵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가볍게 스쳤습니다. 처음엔 무슨 냄새인가 하는 호기심도 없었습니다. 조금 후 또 한 차례 같은 향기가 코끝을 휘어 감았을 때에야 “혹시 난초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른 벽면 가스난로 밑에 방치하다시피 했던 난 화분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여남은 개의 잎줄기 사이로 꽃대궁이 살며시 솟아올라 꽃봉오리를 피웠습니다. 약간 황색을 띤 꽃봉오리는 꽃받침 속에 숨어서 오히려 야생화처럼 수수한 척 했습니다. 다가가 화분 가까이에 얼굴을 댔더니 진한 난향이 코끝을 찔렀습니다.

살짝 마음이 켕겼습니다. 난초에게 미안한 생각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그 난초를 난초답게 대접하기는커녕, 무시하고 학대한 셈입니다.

작년 초봄 사무실이 생긴 것을 기념하여 친지 몇 분이 난 화분을 보내왔습니다. 꽃이 활짝 핀 양난 화분은 놓고 보다가 꽃이 시들자 치워버렸고, 잎줄기가 가는 난 화분 하나는 치워버리기도 뭣해서 그냥 방 한구석에 내버려 두었습니다.

사군자의 하나인 난은 선비의 기품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사실 나는 난에 대한 남다른 지식도 없고 각별한 관심도 없습니다. 승진과 사무실 이전에 보내는 난 화분, 고스톱에서 별로 알짜가 없는 화투의 난초, 대원군의 난 그림과 가짜에 얽힌 얘기, 어릴 때 풍란을 캐러 절벽을 오르던 추억, 양난 재배하다 손해 본 친구 얘기 등이 난에 대한 내 정보요 지식의 전부입니다. 사실 동양란과 양란을 구별할 줄도 모르니 내 사무실에 놓인 난이 어떤 종류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관심 정도이니 난 화분을 가꾸기는 고사하고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몇 번 물을 준 흔적을 보았으나, 내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을 눈치 챘는지 그 아주머니도 관심이 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난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봄이 가고 여름이 되었습니다. 물 한 방울 줄 생각도 없이 말입니다. 그런데 뜨거운 어느 날 우연찮게 난 화분으로 시선이 옮겨졌는데 잎사귀가 생기를 잃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어이쿠, 그냥 두면 죽겠다.’ 싶어 마시다 컵에 반쯤 남은 물을 주었습니다.

여인의 허리처럼 잘록하고 호리호리한 난 화분은 흙이라기보다 자잘한 돌 부스러기 몇 줌 정도로 채워져서 수분을 가둘 수가 없었던지 물은 화분 밑바닥 숨구멍에서 곧 새어나왔습니다. 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며칠에 한 번 화분을 화장실 등에 옮겨 놓고 물세례를 퍼붓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그럴 만큼 난에 관심이 없었으니 마시다 남은 물로 그 난은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 후 물을 주지 않으면 난이 죽을지 모른다는 잠재적 심리가 발동했는지 한 달에 한번 정도 어쩌다 생각나면 컵에 담고 마시다 남은 물을 주었습니다. 분갈이도 안 했고, 난화분에 거름을 주어야 하는 건지 그냥 두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12월이 되면서 또 난초의 존재를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겨울에 찾아온 난향은 소리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존재의 가치를 무시당한 난은 아름다운 향기로 내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나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말입니다. 사죄의 마음이 발동한 걸까. 나도 모르게 컵을 들고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가득 받아다 난 잎 위에 부었습니다. 난이 나에게서 처음으로 물 한 컵을 온전히 받아먹은 것입니다. 난은 물을 가두지 않고 화분 밑 숨구멍으로 거의 모두 내려 보냈습니다. 물 냄새만 맡는 걸로 만족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언제 내가 많은 물을 달라고 그러더냐.”라고 중얼거리는 게 분명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난은 나에게서 물을 받아먹었다는 반응을 보내왔습니다. 이삼일 후 난 화분에는 또 하나의 꽃대궁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잎사귀들 사이에 숨어서 세상을 살피는 것 같은 수줍은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매란국죽(梅蘭菊竹)을 노래하고 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송나라 소동파(蘇東坡)의 시 중에 난을 소재로 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봄의 난초는 미인과 같아서
캐지 않으면 스스로 바치길 부끄러워하지
바람에 건듯 향기를 풍기긴 하지만
쑥대가 깊어 보이지 않는다네
(春蘭如美人 不採差自獻 時聞風露香 蓬艾深不見)

옛날에 한 번 접한 것 같은데 그때는 추상적으로 멋있는 구절이구나 하는 정도였지 만 이제야 그 구절의 맛을 구체적으로 본 것 같았습니다. 난에 대한 관심이 없었으니 옛 시인의 깊은 음유를 공감할 수가 없었을 수밖에요.

과학적으로 보면 식물은 적당한 물만 있으면 다른 필요한 영양분 95퍼센트를 공기에서 흡수하며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느닷없는 난향의 공습을 받고서 옛 문인들의 시정(詩情) 못지않게 다른 무엇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입니다. 돌 부스러기 한 줌 속에서 자라고 꽃봉오리를 맺는 난초에서 생명의 색깔을 보고,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생명의 냄새를 맡습니다. 그 어떤 시보다, 그 어떤 그림보다, 그 어떤 불후의 명작보다 아름다운 작품이 바로 하나의 생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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