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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意事必成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뜻을 품고 있으면 이룰수있다 010-7641-1981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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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 것인가? 더할 것인가?

노자는 에너지 미니멀리스트!(Laotzu is an energy minimalist) 발전산업 즉 넓게 보아 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내 눈에는 노자는 에너지를 최소로 쓰고 살자고 절규하는 에너지초절약운동주의자이다. 노자는 빈둥빈둥 무위도식(無爲徒食)을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노자는 철저한 액티비스트(activist)다. 다만 무위(無爲) 즉 무위(無僞)의 함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필요한 행동을 최소한으로 자연스럽게 하되 거짓된 함(僞)과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함은 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노자는 인위적 수단을 통해 사기치며 조작하는 작위(作爲) 즉 조작(造作)을 거부한다. 요즘은 조작(造作)을 넘어 자신이 조작(操作, manipulation)할 수 있다는 오만이 빵빵하게 들어찬 사람이 많다. 정치인들의 수사가 그것이다.

노자에게 있어 유위(有爲)는 적을 수록 좋은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어떤 시스템이 허(虛)를 지탱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요즘 말로 하면 최대한 지속가능한 행위(the most sustainable move)이고 활용이요 초소한의 개발이다. 도올(1948~ )이 말하듯이 강물에 허가 많으면 상류에서 똥 한바가지를 위에서 부어도 저 아래 사하촌에서는 식수로 먹을 수 있는 허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개울에 덤프차로 똥물을 쏟아 부으면 정화할 허는커녕 강이 죽는다.

노자가 말하는 위(爲, action)는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사물이 되어가는 길을 통찰하고서 그 시작의 시작(beginning of beginning)에서 최소한의 튕김으로 전체의 길을 조율하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治之於未亂(치지어미란)’이요 ‘爲之於未有(위지어미유)’의 세계이다.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발생해 굳기전 말랑말랑할 때 조치하라!

무위(無爲)를 밀고 나가면 무사(無事)함에 이른다. 무사란 사무라이(武士)가 아니라 일을 없게 하는 것이다. 신경 쓸 일이 없게 자동 뻥으로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허를 극대화하면서...산위에서 눈덩이를 굴릴 때 잘 굴러가는 길을 보고 굴리는 것이지 스노볼이 이리 걸리면 달려가고 저리 걸리면 달려가 일일이 손으로 굴려 빼내 다시 굴리는 아둔한 짓거리를 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임제록(臨濟錄)』에는 더 나아가 ‘구하는 마음이 그치는 곳이 무사(無事)이다’고 말한다. 마음이 일지 않게 하니 애쓸 일도 없게 된다. 그 정도는 너무나 지난한 경지이다. 범인이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무사(無事)란 일을 없게 하는 것이다. 일을 없게 하면 인위적으로 일의 방향을 바로 잡으려고 온갖 고초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된다.

경영에서 어떤 개발제품(venture product)이 손익분기점(損益分岐點)을 넘겼다는 말을 하곤 한다. 영어로는 Breakeven Point라 한다. 어느 시점에서 짤랐는데(break) 손(losses)과 익(gains)이 똑 같다(even)는 것이다. 세상사는 대부분 더하기로 나가지 않으면 빼기로 나간다. 공자가 학(學, Learning)이라는 인문의 힘을 믿었다면 노자는 사람이 감히 무엇을 한다는 것을 조작의 개념으로 많이 보았다. 이른 바 그는 스스로 그러한 천지자연의 움직임(道之動, Movement of Tao)과 고요함(靜, Quiescence of Tao)의 공능을 신봉하였다. 상징체계인 빙산의 일각을 가지고 달팽이뿔(蝸角) 싸움을 해보았자 수면이하의 빙산의 몸체의 질(바탕, 質)의 보존이 주는 결과적(in the long run) 영향력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공자류의 공부는 박학어문(博學於文)이다. 인문(Humanitas)의 공부는 폭과 깊이를 자꾸 넓혀가는 덧셈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자는 반대이다. 뺄셈을 강조했다. 무엇을 감히 하려고 도모하지 말고 억지로 집착하지 말라(執者失之). 욕망의 사이즈를 줄이고 타인을 조작의 대상으로 보고 내 꾀로 상대방을 앞지르고자(outwit) 하는 행위를 경계하였다. 역방향으로 일이 없게하는 것으로 나가야지 일을 억지로 연출하고 꾸미고 조작함으로써는 천하를 맡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에너지만 엄청 쏟아 붓고 미래의 에너지까지 끌여 당겨쓰는 사람이니 결국은 이문없는 행위를 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공자가 매체(文)개념을 통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노자는 매체 개념을 통하지 않고 바로(im-mediately) 근본(質)으로 바로 질러가 일을 하는 사람이다. im은 부정이고 mediate(중간에 끼다)
이것이 내가 읽어낸 노자 할아방의 『노자(老子)』48장의 숨은 뜻이다.


『도덕경(道德經)』제48장

사람이 만든 지식을 배우고자 애쓰면 날로 더하기를 하게 된다.
스스로 그러한 길을 몸에 깨닫고자 힘쓰면 날로 빼기를 하게 된다.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고자하면 빼고 또 빼야 한다.
그러하여 억지로 에너지를 들여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
큰 에너지를 들여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는 일이 없다.
늘 공연한 일이 생기지 않게 미리 채비해서 천하를 취한다.
일을 만들어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천하를 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爲學日益(위학일익).
爲道日損(위도일손).
損之又損(손지우손),
以至於無爲(이지어무위).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
取天下常以無事(취천하상이무사).
及其有事(급기유사),
不足以取天下(부족이취천하).


爲學日益(위학일익).
사람이 만든 지식을 배우고자 애쓰면 날로 더하기를 하게 된다.

위(爲)는 학(學)이라는 목적어를 달성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타동사로 쓰였다. 영어로 keep learning 으로 보면 된다. 학(學, Learning)의 내용은 인간이 상징체계로 압축해 만들어 시스템화한 모든 것이라는 뜻으로 보자. 일(日)은 나날이 즉 day after day 이다. 익(益)은 증가(increase)한다 이다. 학(學)이 넓어진다(博). 복잡성이 자꾸 높아진다. 복잡성이 높아지면 끼리끼리 해먹는다. 자신들의 권위의 성안에서 수성을 한다. 왕삐(王弼)는 그래서 이간제번(以簡制繁) 사상을 제창한다. 간단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제압한다! 왕삐가 말하는 학(學)은 어떤 것일까? 이 구에 대한 그의 주(注)를 들여다 보자.

務欲進其所能, 益其所習. (무욕진기소능, 익기소습.)
힘써 그 잘하는 바를 더욱 진전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지니고
그 (데스티네이션으로 가고자) 익히는 노력을 더욱 배가한다.

爲道日損(위도일손).
스스로 그러한 길을 몸에 깨닫고자 힘쓰면 날로 빼기를 하게 된다.

도(道)를 한다(爲)함은 무슨 말인가? 학(學)은 개별 에너지 중심적이다. 도(道)는 전체 에너지 중심적이다(total energy-centered). 도를 하면 전체 시스템의 에너지 사용이 최소화 되는(寡)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나날이 마이너스(損)로 갈 수밖에 없다고 노자는 주창하고 있다. 노자가 말하는 공부를 하면 자꾸 뺄셈을 하게 된다. 욕망의 사이즈를 줄이고 국가(회사)의 사이즈를 줄이고 백성(사원)의 수를 줄이는(小國寡民) 뺄셈의 삶 그것이 손(損)이다. 왕삐가 말하는 도(道)의 실천의 데스티네이션(destination, 종착역)은 어디일까?

務欲反. 虛無也. (무욕반, 허무야.)
자연의 생명력으로 힘써 돌아간다. 허(虛)하고 무(無)해 진다.

허(虛)는 그 대상이 지닌 함장태(Potentiality)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릇이 비어있어 음식을 많이 담을 수 있다. 배고파야(허가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고 맛있다. 무(無)는 진공적 없음(nothingness of vacuum)이 아니라 불필요한 인위가 최소화되는 무위의 무이다.

損之又損(손지우손),
스스로 그러한(自然) 삶을 살고자하면 빼고 또 빼야 한다.

그것을(之) 빼고(損) 또(又) 뺀다(損)는 구문으로 끊이지 않는 연속동작을 주문하고 있다.

以至於無爲(이지어무위).
그러하여 억지로 에너지를 들여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

이(以)는 그렇게 빼고 또 뺌으로서. 지어(至於)는 ...에 이른다. 무위(無爲)는 앞에서 사이비 위(爲)즉 위(僞)를 없게 하는 적극적 행위로 봐야한다.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
큰 에너지를 들여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는 일이 없다.

무위(無爲)를 실천하면(而) 되지 않는 일(不爲) 이 없다(無). 무위로 안 되게 할 수 있는 네거티브 요소를 미리 채비하여 두었기 때문이다. 노자류의 삶을 살려면 질박한 마음으로 인간의 욕망이 그리는 곡선을 대강 짚어서 미리 손을 써두어야 한다. 전투는 안 하고 이기면 가장 좋은 것이고 일은 애쓰지 않고 이루면 가장 좋은 것이다. 고기를 잘라도 고기의 결을 따라 자르면 날이 죽지 않는다. 억지로 자르면 허구한 날 칼날을 갈아야한다. 『노자(老子)』제37장에 보면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이무불위)’라는 같은 용례가 나온다. 도는 늘 무위로 한다. 그러나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왕삐의 주를 보자.

有爲則有所失, 故無爲乃無所不爲也.(유위즉유소실, 고위내무소불위야.)
억지로 하면 잃는 바가 있다.
고로 무위의 방식을 선택하면 (잃는 바가 없으니)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取天下常以無事(취천하상이무사).
늘 공연한 일이 생기지 않게 미리 채비해서 천하를 취한다.

취(取)는 취한다(take hold of)로 볼 수도 있고 다스린다 의 뜻으로 보아도 좋다. 천하(天下)는 하늘 아래 자기가 영향을 받는 세상으로 좁혀보는 것이 좋겠다. 상(常)은 항상이다. 이(以)는 by means of 로 ...을 통해서. 무사(無事)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불필요한 에너지가 드는 일을 사전에 없게 함으로. 이 구절에서 보듯이 노자의 궁극적 관심사는 늘 최상급 통치자나 리더의 처신과 판단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왕삐의 주이다.

動, 常因也!(동, 상인야!)
움직이면 늘 까닭이 있다.

及其有事(급기유사),
일을 만들어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급(及)은 이르면. 기(其)는 지시대명사로 ‘그’. 유(有)는 타동사로 일(事)을 만들어 내는 행위. generate tasks to do. 삐의 주이다.

自己造也!(자기조야!)
자기로부터 시작되어 지어내는 것이다.

不足以取天下(부족이취천하).
천하를 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로써(以) 천하(天下)를 취하기(取)에는 역부족(不足)이다. 삐의 주를 보자.

失統本也!(실통본야!)
큰 근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리고자 하는 것은 시대의 고금에 차이가 없다. 모든 것이 그 한 동작에 달려있다. What move are you going to make?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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