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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意事必成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뜻을 품고 있으면 이룰수있다 010-7641-1981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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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인간으로 살아갑시다 2]

내 몸의 주인으로 살자

『장자(莊子)』란 서물(書物)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대자유인(a truly free man)의 삶입니다. 그것은 야성(野性)에의 사랑이요 시원적 생명력에의 사랑이요 대지에의 사랑입니다. 자유인은 자신이 자신을 부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남의 종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스케줄과 노동 강도를 자신이 조절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기 식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주체적인 사람의 온갖 움직임은 “자신의 속에서 꼬불꼬불 익어서 나왔기에 올곧고 이에서 멀어지기가 어렵다.” [「즉양편(則陽篇)」유중출자(由中出者), 유정이불거(有正而不距)]

일간스포츠에 연재되어 백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방학기의 만화에『바람의 파이터』란 작품이 있습니다.

백수는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준말로 사전적 정의는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을 말한다. 백수는 그런 면이 있겠으나 건달에 대해서는 좀 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달은 제도화 된 삶(Institutionalized Life) 즉 월급을 받으며 어떤 단체나 기관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즉 일체의 구속을 받지 않고 내 뜻대로 자유분방하게 사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모든 욕망과 꿈을 돈을 통해 달성하는 돈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화의 실제 모델은 극진(極盡)회의 관장 최배달 입니다. 그는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전에 도장의 바닥에 제자들을 앉혀두고 무도철학을 강연했습니다. 그 내용이 『최배달의 유언(遺言)』이라는 제목의 비디오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5년전에 미국의 산호제이의 한 가게에서 빌려 보았는데 마스터 초이의 유언의 골자(骨子)는 자율 프로그램(self-led program of discipline)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참 무도인이 될 수 있다는 당부를 그는 피로하고 있었습니다.

자율이란 무엇입니까? 자율(自律)은 스스로 자(自)에 다스릴 율(律)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나 스스로(我, self) 다스린다는 말로 타인(他. the others)에 의한 다스림인 타율(他律)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타율은 강제성이 자율은 자발성이 강조되는 말입니다. 자율은 영어로는 autonomy, self-regulation, self-control, self-monitoring 등으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자율의 삶은 좋아서 하고, 하고 싶어서 하고 재미있어서 하고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서 사는 삶입니다. 자율은 생명현상에도 부합됩니다. 호랑이가 타율로 산다. 상상할 수 있을까요? 동물원의 호랑이가 아닌 다음에야 말입니다. 자율이야 말로 불만 붙으면 의욕의 샘이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가장 강하게 나오는 원천입니다. 자율은 자발(自發)이고 자원(自願)입니다.

어떤 일을 잘 하려면 오랫동안 수련을 해야 합니다. 갑자기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노 웨이 아웃! 그런 삶의 길은 없습니다. 몸의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달이라는 것, 마스터라는 것은 타율의 강압성도 어느 정도 그 과정에서 필요 하지만 결국은 자율이라는 긴 시간의 턴넬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부산물입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극렬히 원하면 그 일을 수행하는 에너지도 더불어 극렬하게 용출되어 나온다. 무엇을 제대로 원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하니까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율은 스스로를 키우는 가장 훌륭한 motivator(동기 부여자)입니다. 소중히 해야 하고 가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감신경계가 있으면 부교감신경계가 있듯이 자율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는 타율의 부과라는 지루를 묵묵히 인내하며 걸어가야 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직에서는 자율을 죽이고 타율의 강제에 순응하며 야성을 죽이며 살 것을 너무 강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샐러리맨으로 강력한 권위주의적 명령 구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계속 이렇게 굴러가면 다행이겠는데 그러나 이제 정보화시대를 맞이하며 모든 삶의 양식이 회전하고 있으니 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새로운 사회운영원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자율이요 자율 프로그램입니다. 야생 동물이 살아가듯이 말이다.

『앨빈 토플러가 쓴 『권력이동』(한국경제신문사, 1990)의 제 18장은 ‘자율적인 종업원’으로 표제가 되어있습니다. 그이의 말의 시냇물을 따라 조그만 종이배를 띄워 따라가 봅시다.

사회의 권위체계가 수직체계에서 평등, 협동, 상보적 관계로 수평체계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시와 순응과 인내가 아니라 신뢰와 협동과 개성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장속도가 빠른 첨단 산업에서는 낡은 권위주의적 명령구조가 점차 사라져 새롭고 보다 평등주의적이고 협동적인 작업형태로 대체되고 있다. (p. 309)

IT 등의 기술혁신이 근로자의 자율성에 의한 창의력 발휘를 요구하고 있고 소비자의 성마름(impatience)과 같은 속도의 경제가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술혁신의 요구는 근로자의 자율성을 촉진시킨다. 기업은 새제품을 신속하게(가속화 압력)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노동의 질도 기술혁신과 삶의 빠른 속도는 쉽게 교체할 수 없는 비교환적 노동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전문성이 없으면 이제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거나 무인생산(manless manufacturing)으로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중을 못 데리고 있으면 절이 없어지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더 한층 중요한 것은 비교환성으로 전환해 가는 것이다. 노동이 점점 더 분화되어 감에 따라 중요한 기능을 보유한 노동자의 협상지위가 향상된다. 조직된 집단이 아닌 개개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314)

이것이 바로 토플러가 말하는 권력이동 입니다. 권력이 이제 핵심경쟁력을 지닌 사람의 손으로 옮아가게 된 것입니다. 직원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기업은 이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막스가 그토록 원했던 생산수단의 소유가 근로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사람만이 희망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권력이 비교환적 노동 가치를 지닌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보면 가당치도 않겠으나 세상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이렇게 가니 나 주식회사(me corporation), 나라는 브랜드(the brand you) 등의 말이 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혁명론 자들은 권력이 ‘생산수단’의 소유자에게 넘어간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생산수단’을 탈취하지 않는 한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pp. 314~315).

마르크스는 이제 틀렸습니다. 이제는 노동과 자본이 융합하고 있습니다. 푸젼입니다. 이제는 근로자 자본가(worker capitalist)가 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자본의 힘만으로는 마이크로 소프트란 회사를 유지해 갈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하지 않으면 바로 몸짓이 갑자기 공룡이 되어 생존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놀라시겠지만 몽골의 고비사막에 가면 공룡의 화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룡알도 있습니다. 있고요. 제가 만져봤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업장에서 그 다음 단계의 권력의 이동을 겪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새로운 종류의 자율적 종업원이 등장한다고 하는 역사적인 큰 아이러니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종업원의 머리 속에 번뜩이는 것으로서 앞으로 사회는 그것을 미래의 부(富)와 권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삶게 될 것이다. (p.315)

이것이 바로 지식경영의 골인 지점입니다. 지식경영은 조직안의 하리어라키를 통해서 입으로 지시로 경영되던 기존의 조직을 통한 경영관행을 이제 송두리째 뽑아 던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 기업이 기술혁신을 위해서도 품질개선을 위해서도 종업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만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종업원이 기쁨의 삶을 살지 않으면 어떠한 경쟁력도 유지할 수 없는 개인 가치가 극대화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드리는 이 시대적 찬스에 대한 족집게 과외입니다. 역사의 간교(奸巧)에 의한 꼭두각시놀음입니다. 이런 때는 자율적 삶에 근간을 두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ROTC 식이나 학사장교식이나 삼군사관학교식이나 해병대식은 이제 먹히지 않습니다. 돌리는 눈 알만 아플 뿐입니다. 이제 굼발이 리더십으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산업문명시대의 유산이 아니라 유물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협동하여 신명나게 무엇을 하지 않으면 원하는 목적물을 달성하기가 점점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창의는 자유라는 공기를 먹고 성장합니다. 억압적 근무분위기에서 창의성이 나온다. 글쎄요. 창의는 자율 프로그램에서 사는 사람의 삶에서 가장 잘 발휘(發揮)되지 않을까요? 앨빈 토플러가 이야기한 권력이동은 이제 바로 우리 곁에 와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잃어버린 야성의 회복입니다. 몽골리안의 푸른 반점을 붙이고 나온 중앙기마족으로 넓은 초원을 달리고 달리던 그 야성을 되찾는 길입니다. 그런 야(野)한 사람이 이제 세상을 바꾸어 가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말은 사람보다 훨씬 시야의 각도가 넓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경마장의 경마는 눈알이 딴 데 돌지 않게 옆에 눈가리개를 달고 달리는 가 봅니다.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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