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관의 윤리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던 호치민(胡志明)이 1969년 사망했을 때 그의 방에는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목민심서를 곁에 두고 애독했다고 전해집니다. 몇 년 전 하노이에 관광을 갔을 때 그가 기거했던 처소를 구경하면서 듣고 본 것은 탐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소한 그의 생활 흔적이었습니다.
목민심서는 목민관(牧民官:지방수령)이 임금으로부터 관직을 제수받고 부임할 때부터 그 직을 물러나올 때까지 갖춰야 할 언행을 망라한 일종의 공직자 윤리지침으로,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하면서 독서하고 사유하면서 엮은 책입니다.
호치민이 목민심서의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율기육조(律己六條)의 청심’(淸心) 부분을 읽었을 게 분명합니다.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로
모든 선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정약용이 이 책을 펴낸 것이 1818년이니까 거의 200년 전의 글입니다. 조선 중기 이후 정쟁은 심화되고 관리들의 부패가 극심할 때였으니 귀양살이하는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의 공직 윤리가 어때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민심서의 핵심 테마 중 하나인 ‘청렴’을 생각하며 오늘날 권력 주변을 바라보면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파이시티 특혜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부패 스캔들은 공직자의 부패란 게 20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결국 바탕이 청렴한 사람을 쓰지 않고는 권력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가 힘듭니다.
박영준 씨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권력 실세로 떠올라 어떤 여당 의원이 지적했듯이 ‘112신고’가 됐던 인물입니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보좌관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정권인수위팀 구성원이 되더니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 발탁됐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직책이 바뀔 때마다 ‘왕’자가 붙었습니다. 청와대에 근무할 때는 ‘왕비서관’이 됐고, 그에 대한 권력사유화 논란이 일자 얼마동안 쉬다가 다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으로 발탁되자 ‘왕차관’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행사하는 데 뛰어난 감각과 추진력을 갖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운찬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평을 전하자,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실에서 그를 뽑아내긴 했으나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발령했다고 합니다.
박영준 씨는 최근의 사례이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불리던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로 줄줄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동안은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되면 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것을 보았지만, 현 정권은 그게 더욱 빨라지고 심한 것 같습니다. 기존의 정치 논리로 바라보면 박영준 씨의 추락도 지는 권력 주변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직 윤리라는 국민적 잣대로 보면 근래 잇따라 일어나는 권력 주변의 부패 스캔들이 정권의 도덕성을 말해주는 단서라고 한들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다”는 말이 한동안 떠다닌 적이 있습니다만, 영혼이 없는 실세 측근들이 결국 정권의 말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목민심서는 오늘날에도 많이 읽히고, 공직자의 자세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입니다. 직업 공무원들 중에는 목민심서를 읽으며 자신을 다스리고 추스르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공직자의 직업윤리를 본시부터 깨닫고 자정(自淨)의 정신을 가다듬는 청렴한 공직자들도 분명 있다고 확신합니다. 또 얼마 전에는 서울시가 '공직자 목민심서'를 제정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윤리정신을 확산시키려는 교육적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 박봉에 허덕이던 공무원상과 달리 지금은 가장 많은 대학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서 들어가려고 하는 곳이 공직입니다. 그래서 공직윤리라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차관’ 스캔들과 같은 윗물의 부패사건이 터지면 아랫물은 한순간에 흐려지고 맙니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그 힘에 상응하는 영혼이 없을 때는 위험합니다. 채 300일이 남지 않는 현 정권에 영혼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늦은 건가요. 그러면 차기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는 여야 정치인들 주변에는 어떤 영혼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이 말이 새롭게 보입니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던 호치민(胡志明)이 1969년 사망했을 때 그의 방에는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목민심서를 곁에 두고 애독했다고 전해집니다. 몇 년 전 하노이에 관광을 갔을 때 그가 기거했던 처소를 구경하면서 듣고 본 것은 탐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소한 그의 생활 흔적이었습니다.
목민심서는 목민관(牧民官:지방수령)이 임금으로부터 관직을 제수받고 부임할 때부터 그 직을 물러나올 때까지 갖춰야 할 언행을 망라한 일종의 공직자 윤리지침으로,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하면서 독서하고 사유하면서 엮은 책입니다.
호치민이 목민심서의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율기육조(律己六條)의 청심’(淸心) 부분을 읽었을 게 분명합니다.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로
모든 선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정약용이 이 책을 펴낸 것이 1818년이니까 거의 200년 전의 글입니다. 조선 중기 이후 정쟁은 심화되고 관리들의 부패가 극심할 때였으니 귀양살이하는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의 공직 윤리가 어때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민심서의 핵심 테마 중 하나인 ‘청렴’을 생각하며 오늘날 권력 주변을 바라보면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파이시티 특혜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부패 스캔들은 공직자의 부패란 게 20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결국 바탕이 청렴한 사람을 쓰지 않고는 권력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가 힘듭니다.
박영준 씨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권력 실세로 떠올라 어떤 여당 의원이 지적했듯이 ‘112신고’가 됐던 인물입니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보좌관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정권인수위팀 구성원이 되더니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 발탁됐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직책이 바뀔 때마다 ‘왕’자가 붙었습니다. 청와대에 근무할 때는 ‘왕비서관’이 됐고, 그에 대한 권력사유화 논란이 일자 얼마동안 쉬다가 다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으로 발탁되자 ‘왕차관’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행사하는 데 뛰어난 감각과 추진력을 갖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운찬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평을 전하자,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실에서 그를 뽑아내긴 했으나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발령했다고 합니다.
박영준 씨는 최근의 사례이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불리던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로 줄줄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동안은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되면 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것을 보았지만, 현 정권은 그게 더욱 빨라지고 심한 것 같습니다. 기존의 정치 논리로 바라보면 박영준 씨의 추락도 지는 권력 주변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직 윤리라는 국민적 잣대로 보면 근래 잇따라 일어나는 권력 주변의 부패 스캔들이 정권의 도덕성을 말해주는 단서라고 한들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다”는 말이 한동안 떠다닌 적이 있습니다만, 영혼이 없는 실세 측근들이 결국 정권의 말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목민심서는 오늘날에도 많이 읽히고, 공직자의 자세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입니다. 직업 공무원들 중에는 목민심서를 읽으며 자신을 다스리고 추스르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공직자의 직업윤리를 본시부터 깨닫고 자정(自淨)의 정신을 가다듬는 청렴한 공직자들도 분명 있다고 확신합니다. 또 얼마 전에는 서울시가 '공직자 목민심서'를 제정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윤리정신을 확산시키려는 교육적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 박봉에 허덕이던 공무원상과 달리 지금은 가장 많은 대학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서 들어가려고 하는 곳이 공직입니다. 그래서 공직윤리라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차관’ 스캔들과 같은 윗물의 부패사건이 터지면 아랫물은 한순간에 흐려지고 맙니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그 힘에 상응하는 영혼이 없을 때는 위험합니다. 채 300일이 남지 않는 현 정권에 영혼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늦은 건가요. 그러면 차기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는 여야 정치인들 주변에는 어떤 영혼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이 말이 새롭게 보입니다.
'장기표의 시사논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인(知人)과 안민(安民) (0) | 2012.09.29 |
---|---|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 대선 후보들, 무엇이 문제인가? (0) | 2012.09.29 |
‘29만원 수표’든 전두환 그림 붙이려다… (0) | 2012.05.18 |
야권은 왜, 3개월 만에 망해버렸을까? (1) | 2012.05.18 |
한국 진보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0) | 2012.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