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매동 ~ 함양 금계 11㎞ 느리게…나를 만나러 가는 길
느리게…나를 만나러 가는 길…남원 매동 ~ 함양 금계 11㎞
2008년 5월 8일(목) 오후 5:3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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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동마을 ~ 중황마을(1시간30분) | 안내: 법정스님
떠나기 전에 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요즘 길의 주인은 자동차다. 도심을 걸어보면 수많은 신호등에 제어를 당하고 만다. 바퀴를 위한 길들은 넓고 단단하다. 확 뚫렸다. 발바닥을 위한 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법정스님은 ‘홀로사는 즐거움’에서 ‘땅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제 발로 걷지 않고 자동차에 의지하면서 건강을 잃어간다. 제 발로 걷는다는 것은 곧 땅을 의지해 그 기운을 받아들임이다. 그리고 걸어야 대지에 뿌리를 둔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의 말대로 걷기는 곧 ‘생각하기’다. ‘무소유’에서는 ‘흙과 평면 공간. 이것을 등지고 인간이 어떻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현대문명의 권속들은 그저 편리한 쪽으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평면과 흙을 잃어간다. 불편을 극복해가면서 사는 데에 건강이 있고 생의 묘미가 있다는 상식에서조차 멀어져 가고 있다’고 썼다.
이제 걷자. 10분쯤 지나면 비포장 임도, 다시 10분쯤 걸으니 숲길이 시작된다. 바퀴에 의지하지 않고 살던 시절 사람들이 걸어다녔을 것이다. 리기다소나무도 많지만 숲은 두텁고 고즈넉했다. 가끔씩 아름드리 노송도 보였다. 흙은 고슬고슬했고, 마른 솔잎이 떨어져 있었다. 돌부리도 있다. 바퀴는 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의 발가락은 돌과 자갈, 흙길을 즐길 줄 안다. 그래서 이런 길은 즐겁다.
■ 중황마을 ~ 등구재(1시간30분) | 안내: 피에르 쌍소, 데이비드 소로
이 구간의 들머리는 큰 재미는 없었다. 시멘트 포장 임도가 많았던 탓이다. 흙길을 밟다가 시멘트에 발을 올려놓으니 발가락도 흥을 잃었다. 임도끝 논둑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신명이 났다. S자로 휘어진 논길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그 거대한 지리산이 웅크리고 있다. 마을은 사방팔방 산줄기로 싸여있는 형국이다. 여기서 마음 고삐를 조금 더 늦췄다. 낙타처럼 느릿하게 걸으라고 충고했던 소로를 떠올렸다.
풍경도 중요하지만 걷기의 속도도 중요하다. 소로는 ‘산책’에서 낙타처럼 느리게 걸으라고 충고했다. ‘월든’에서는 ‘때로는 탐사와 의문을 접어두고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걸어야 한다. 사물을 본다는 것에 매달리지 말자. 하루를 완전히 던져 마음을 열어보라’고 썼다. 쌍소는 ‘한가로이 거니는 것.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고 했다.
산에서도 습관적으로 속도를 내는 당신! 제발 한 숨 죽이고 느리게 걷자. 지리산도 새삼 다시 보일 것이다.
■ 등구재 ~ 창원마을(1시간30분) | 안내: 다비드 르 브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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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구재는 남원과 함양의 경계. 고갯마루를 넘어서니 산풍경이 확 바뀐다. 낙우송 숲이다. 나무들은 건강했다. 이파리는 싱싱했다. 흙길의 끝머리엔 나무 계단이 있었고, 거기서부턴 또다른 오솔길이 이어졌다. 오솔길 양옆으로는 하얀 풀꽃이 지천이다. 길 옆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는데 ‘동물들의 오아시스’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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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는 ‘마을은 길들이 모이는 곳, (중략) 마을이 몸통이라면 길은 몸통에 붙은 팔과 다리’라고 썼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등구재길을 두고 촌로는 장을 보러다녔던 하룻길이라고 했다. 브르통은 ‘(길이란) 무수한 보행자들이 남긴 잎맥 같은 것’이라고 했다. 희미한 발자국이 한사람 한사람의 서명이라는 것이다. 나물짐을 싸들고 장을 보러다녔던 사람들의 생이 그 길에 새겨있음은 분명하다. 마을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지만 머잖아 트레커들이 길의 새주인이 될 것이다.
■ 창원마을 ~ 금계마을(1시간30분) | 안내: 크리스토퍼 라무르
다시 솔숲길이다. 솔숲은 울창했다. 내리막길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리 굽었고, 저리 굽었다. 운치있는 숲길 너머로 마지막 구간에 채석장이 불쑥 드러나 맥이 탁 풀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고운 길이다. 금계마을 입구엔 경관이 좋아 펜션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었다. 걷기를 마치고 구멍가게에서 맥주 두 병을 샀더니 주인이 신김치를 내왔다. 시원한 맥주 한 잔도 걷기의 즐거움이다. 크리스토퍼 라무르는 ‘걷기의 철학’에서 ‘걸음은 우리를 물질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세상에 붙들어 매는 매듭을 풀고 몸을 정화한다. 정신이 몸에 자리잡게끔 도와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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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만 따진다면 지리산트레일보다 더 좋은 길도 많을 것이다. 지리산트레일은 숲길, 논둑길, 임도, 마을길이 함께 섞여있다. 정상을 향해 세로로 오르지 않고 산뿌리를 따라 가로로 휘돌아 가는 길이다. 발바닥을 위한 아니, 가슴과 머리를 위한 길이다.
▶여행길잡이
창원~금계마을 길 헷갈려 조심…6시간 쯤 잡고 천천히 걷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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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구간에 샘은 있지만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물병을 반드시 준비하자. 나무 이정표가 돼 있다. 붉은색은 남원지역을, 검은색은 함양지역을 뜻한다. 화살표 방향만 잘 따라가면 된다. 헷갈리는 구간도 있다. 중황마을에서 논둑길로 접어들기 직전 돌담장이 나온다. 돌담장 오른쪽으로 가면 논둑길이 있다. 등구재를 넘으면 세갈래 길이다. 가운데 길이 트레일 코스다. 창원에서 금계마을 가는 길이 약간 헷갈린다. 시멘트 바닥에 표시가 돼 있다. 이정표가 없으면 등산로처럼 빨간 리본이 매달린 곳이 길이다.
누구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험하지 않은 길이다. 빠른 걸음으로는 4시간이면 1구간 정도는 갈 수 있지만 무리하지 말자. 6시간 정도로 잡고 천천히 걷는 게 좋다. 숙박은 매동마을(http://maedong.org), 송전마을(http://kr.blog.yahoo.com/songjunri), 실상사 템플스테이(http://www.silsangsa.or.kr) 등을 참조하자.
<지리산 | 글 최병준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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