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따가운 햇볕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절기는 못 속인다. 추분과 추석 황금연휴가 지난 이맘때는 야외 활동의 최적기다. 높아진 가을 하늘을 감상하고 들에 핀 야생화를 감상하는 여유를 부리고 싶은 때이다.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과 강원 철원군에 걸쳐 있는 산정호수와 명성산은 계곡의 물과 호수를 감상하고 가벼운 등산을 곁들이면서 이런 ‘탈출’의 욕구를 채워주기에 손색이 없는 코스다.
명성산은 산자락에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등산과 호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망국의 슬픔으로 이 산에서 통곡을 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 하여 ‘울 명(鳴), 소리 성(聲)’자를 붙여 명성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궁예가 도망했다는 패주골, 왕건의 군사가 쫓아오는 것을 살피던 망무봉 등 인근 지명이 그런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계곡에 있는 비선폭포와 등룡폭포, 자인사 등은 경관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왕건에 쫓긴 궁예가 조성했다는 명성산성도 볼 수 있다.
산행은 해발 922m의 정상을 밟는 코스와 삼각봉(해발 903m)을 오르는 코스가 있다.산정호수에서 삼각봉을 거쳐 명성산 정상까지 오르는 코스를 잡으려면 당일 일정으로는 약간 무리다. 따라서 산정호수에서 삼각봉을 올라 등룡폭포쪽으로 내려오는 길이나 산안고개에서 명성산 정상을 오른 후 삼각봉을 거쳐 다시 산안고개로 돌아오는 길 중 하나만 택해 오르는 게 좋다.
정상 부근의 6만여평에는 완만한 경사를 이룬 억새풀밭지대가 형성돼 있다. 10월 중순이면 산정호수의 잔잔한 물빛과 초원의 억새풀이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한껏 더한다. 올해도 10월 13~28일 명성산 및 산정호수관광지 일원에서 ‘제11회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축제’를 열어 유명산악인과 함께하는 억새밭 등반대회와 산상에서의 억새밭 작은음악회 등으로 가을의 낭만속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단, 축제가 열리는 않는 평일에는 인접한 사격장에서의 훈련으로 출입이 통제되므로 사전에 등산 가능 여부를 산정호수관광지부(031-532-6135)에 문의해야 한다.
명성산 아래에 있는 산정(山井)호수는 1925년 포천 지역의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그러나 명성산과 망무봉으로 에워쌓인 주변경관이 워낙 수려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산봉우리가 호수에 그림자로 드리우면 한폭의 산수화를 옮겨 놓은 듯 하다.
만수 때의 면적이 7만8000평에 이르며, 최고 수심이 23.5m, 둘레는 3㎞이다. 호수를 빙 두르고 있는 산책로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나 가족들의 산책용으로 좋다. 한바퀴 완전히 도는 A코스는 1시간30분, 구름다리 부근만 도는 B코스는 30분 정도가 각각 소요되므로 상황에 따라 산책로를 선택할 수 있다.
산정호수에는 새벽 물안개, 한낮 뱃놀이, 저녁노을 등 3색 낭만이 있다. 새벽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오후에는 주변 숲을 배경으로 보트를 타는 연인들의 모습이 한결 여유롭게 느껴진다. 특히 저녁에 차갑고 맑은 공기가 깔리면 주변 산의 나무에서 피톤치드가 발산돼 마치 산림욕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이 곳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산정호수 동쪽으로는 국망봉 강씨봉 백운산 청계산 현등산 등이 있고 서쪽으로는 천보산맥이 뻗어 있어 이 지역은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정호수에는 평강식물원, 보트장, 방갈로, 놀이공원 음식점 카페 콘도 등 대단위 위락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산정호수와 명성산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2시간 거리라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과 포천을 연결하는 47번과 43번 국도를 이용해 번갈아 오갈 수 있는 것은 여행의 지루함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란히 뻗어 있는 이들 도로 주변에는 가벼운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산을 비롯해 휴양지 유적지 갈비촌 온천 가구단지 등 가볼만한 곳이 적지않다.
◇여행메모 ●가는 길=의정부에서 43번 국도를 타고 포천을 지나 문암교 건너 우회전해 한적한 시골길(316번 지방도 이용)로 10분 정도 승용차로 가면 산정호수 입구인 한화콘도와 하동주차장이 나온다. 구리를 거쳐 47번 국도를 이용해 퇴계원, 베어스타운리조트, 내촌을 지나 일동면에 들어선 후 제일유황천에서 좌회전해 일동사이판을 거쳐가도 된다.
●먹을거리=경기도 포천시 일동면과 이동면에는 47번 국도를 따라 백운계곡까지 ‘갈비집’이 이어진다. 포천 이동갈비는 갈비의 기름기를 제거한 후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참나무 숯불에 구워 갈비의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화콘도에서 운천방향으로 1㎞ 정도 떨어진 ‘명문이동숯불갈비’(031-531-6040)는 한약재를 첨가한 양념으로 유명하다. 1인분(400g 기준)에 2만3000원. 주변 텃밭에서 주인이 직접재배한 무공해 채소를 제공한다. 15인 이상 단체는 서울, 인천까지 차량을 무료로 보내주며 철의 삼각지, 고석정 등 인근 관광도 시켜준다.
●묵을 곳=‘산정호수 한화콘도’(031-534-5500)는 객실 209실에 수영장 볼링장 온천 사우나 스포츠마사지 퍼팅골프장 등을 갖추고 있다. 학생과 회사원의 MT장으로 이름난 ‘산정캠프’(031-534-3194)에서도 단체 숙식이 가능하다. 20인 이상이면 식사를 예약 주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