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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意事必成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뜻을 품고 있으면 이룰수있다 010-7641-1981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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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올라온 글


글 올린이와 읽는이의

仁. 義. 禮. 智. 信. 和




인(仁)

아무리 나의 글이
조회수가 저조하다 할지라도
꾸준히 글을 올리니 이것을
‘인(仁)’이라 한다.  


의(義)

정성들여 올린 글을
그 앞글과 뒷글까지 읽어주니 이것을
‘의(義)’라 한다.


예(禮)

재미있는 글을 읽었을 땐
그 글을 쓴 이에게 간단하게 리플이라도
달아 감사의 뜻을 전하니 이것을
‘예(禮)’라 한다.



지(智)

웃기는 글을 쓰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작은 미소에도 리플로서
답하는 아량을 깨달으니 이것을
‘지(智)’라 한다.


신(信)

비록 자신의 글을 읽어 주는 이가 적을지라도
그들을 위해 더욱 더 열심히 글을 쓰니 이것을
‘신(信)’이라 한다.


화(和)

남의 글에 논리적 하자가 있거나
독단적이거나 치졸함이 보이더라도
절대로 반론이나 비평을 가하지 않고
"잘 읽었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라고
추천 하는 인내심을 일컬어 이것을
‘화(和)’라한다.





Only Love



사이버세상에서는 댓글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어느 분의 댓글을 대하면 저절로 미소가 띄워지는 분이 있습니다.
간단한 댓글 속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사이버 항해중의 보람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누는 댓글 속에서 미소짓는
행복한 사이버 항해를 꿈꾸어봅니다.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 |

*인생을 배우는 마음*
    착한 사람에게서는 그 착함을 배우고
    악한 사람에게는 악함을 보고
    자기의 잘못된 성품을 찾아
    뉘우칠 기회를 삼으니 착하고 악한
    사람이 모두 내 스승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배워 끝없이 깊은 인생을 알아도
    언제나 모자라는 것인데..
    우리는 묵묵히 머리를 숙이고 배우는
    인생을 살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배우는 마음은 주체가 확립된
    마음이어야 합니다.
    즉 자기 인생을 올바르게 세우고
    사는 마음입니다.

    설자리에 아직도 서지 못하고
    자기 위치를 바로 정해 있지 못하고선
    사실 배운다는 것처럼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정말 인생을 바로 배우는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겸손과 자기 심화에서
    참된 자기를 키우며 사는 사람입니다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 |

[

어느일간지에 기고한어떤분의 글입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1등을 했는가베’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을 모아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물을 수가 없다.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 |
산은 구름을 탓하지 않는다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 발걸음으로 걸어가라.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느 것 하나라도 마다 하지 않고
긍정하는 대장부(大丈夫)가 되어라.

무엇을 구(求)한다, 버린다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는
대수용(大收容)의 대장부가 되어라.

일체(一切)의 경계에 물들거나
집착(執着)하지 않는 대장부가 되어라.

놓아 버린 자는 살고 붙든 자는 죽는다
놓으면 자유(自由)요, 집착함은 노예(奴隸)다.

왜 노예로 살려는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설상가상(雪上加霜)인 경우도 있다.
그런다고 흔들린다면 끝내는 자유인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데 무엇에 집착할 것인가?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쉼이 곧 수행(修行)이요. 대장부다운 살림살이이다.

짐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없다.
먼 길을 가기도 어렵고 홀가분하게 나아가기도 어렵다.
자유를 맛 볼 수도 없다.



쉼은 곧 삶의 활력소(活力素)이다.
쉼을 통해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充塡)한다.

쉼이 없는 삶이란
불가능할 뿐더러 비정상적(非正常的)이다.

비정상적인 것은 지속(持續)될 수 없다.
아무리 붙잡고 애를 써도
쉬지 않고서 등짐을 진채로는 살 수 없다.


거문고 줄을 늘 팽팽한 상태로 조여 놓으면
마침내는 늘어져서 제 소리를 잃게 되듯이

쉼을 거부한 삶도
마침내는 실패(失敗)로 끝나게 된다.

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삶의 정지가 아니라 삶의 훌륭한 일부분이다.

쉼이 없는 삶을 가정(假定)해 보라.
그것은 삶이 아니라 고역(苦役)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旋律)이라도
거기서 쉼표를 없애버린다면
그건 소음(騷音)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쉼은 그 자체가
멜로디의 한 부분이지 별개(別個)의 것이 아니다.
저 그릇을 보라.
그릇은 가운데 빈 공간(空間)이 있음으로써
그릇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단지 덩어리에 불과하다
.





우리가 지친 몸을 쉬는 방(房)도
빈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지 벽을 이용하는게 아니다.

고로 텅 빈 것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유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삶의 빈 공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쉼은 더욱 소중하다.

붙잡고 있으면 짐 진 자요.
내려놓으면 해방된 사람이다.
내려놓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유와 해방을 쫓아내는 사람이요.
스스로 노예(奴隸)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하필이면 노예로 살 건 뭔가?




"산은 날보고 산 같이 살라하고
물은 날보고 물처럼 살라하네."하는 말이 있다.

산은 거기 우뚝 서 있으면서도 쉰다.
물은 부지런히 흐르고 있으면서도 쉰다.
뚜벅뚜벅 걸어가면서도 마음을 놓고
가는 이는 쉬는 사람이다.

그는 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
그는 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풍요(豊饒)와 자유를 함께 누린다.






쉼이란 놓음이다.
마음이 대상(對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짓고 마음으로 되받는
관념(觀念)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몸이 벗어나는 게 아니고 몸이 쉬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지어 놓고
그 지어놓은 것에 얽매여 옴치고
뛰지 못하는 마음의 쇠고랑을 끊는 것,
마음으로 벗어나고 마음이 쉬는 것이다.





고로 쉼에는 어떤 대상이 없다.
고정된 생각이 없고 고정된 모양이 없다.

다만 흐름이 있을 뿐이다.
대상과 하나 되는 흐름,저 물 같은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쉼은 대긍정(大肯定)이다
오는 인연(因緣) 막지 않는 긍정이요
가는 인연 잡지 않는 긍정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그것이 곧 긍정이다.





시비(是非)가 끊어진 자리
마음으로 탓할 게 없고 마음으로 낯을 가릴 게 없는
그런 자리의 쉼이다.

자유(自由)와 해방(解放)
누구나 내 것이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
그 길은 쉼에 있다
물들지 않고 매달리지 않는 쉼에 있다
삶이 정말 힘들면 높고 깊은 산에 올라 크게 한번 울어버려라 ~~~~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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