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폭력조정주의
비폭력조정주의란 자기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폭력이나 강압적 수단을 사용하는 일이 없이 토론과 협의를 통해 상호 조정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여기서 종교적 차원의 비폭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정치사회적 차원의 비폭력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물론 정치사회적 비폭력이 제대로 된 비폭력주의가 되려면 종교적 차원의 비폭력을 깊이 이해하고 체화해야 하겠으나 이것은 다음 단계의 일로 넘기고자 합니다.
국민여러분! 지금까지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는데 있어 폭력이 불가피했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일제의 침략에 대해 무장독립투쟁이 불가피했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짜르를 타도하기 위한 폭력혁명도 불가피했습니다. 그밖에도 우리는 폭력통치와 폭력행사를 척결하기 위해 폭력적 방법의 동원이 불가피했던 때가 많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폭력(무력사용)은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보문명시대의 도래와 함께 세상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온갖 속임수와 압박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력을 동원해야 할 일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골적으로 무력으로 침공했습니다. 약간의 명분과 빌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은 것이지 서로 합의해서 식민지로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앞에서 몇 차례나 강조했듯이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평화 속에서 인간의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운영의 원리를 지배, 착취, 혹사, 투쟁이 아닌 자율, 상생, 순환, 조정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의사나 권리를 확보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사람과 집단 사이에 분쟁과 갈등이 발생하면 협의와 토론을 통해 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민여러분! 세상에는 좋은 가치들이 얼마든지 있고 성현들의 좋은 말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지 무조건 그런 것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처럼 객관적 여건으로 보면 扁쩜?필요 없게 되었고, 협의와 토론으로 충분히 조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지금 우리사회에는 그야말로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폭력은 가장 반문명적이라는 점에서 오늘 우리사회는 야만사회라고 할 만큼 폭력적입니다.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는 폭력이 크게 줄어들고 있지만 오히려 폭력이 사라져야 할 곳에 폭력이 침투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폭력을 없애야 합니다.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폭력이 발생하지 않을 사회 경제적 조건을 형성하고 또 폭력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폭력의 반인간성, 폭력의 반문명성을 깊이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니다. 폭력은 대체로 계획적이기보다 충동적이라는 점에서 폭력을 행사하려는 마음 자체를 없애야 하고, 이것은 교육과 수련을 통해서 달성될 것입니다. 폭력은 인간의 해방된 삶을 실현하는 데 가장 무서운 장애물입니다. 상대방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더욱더 나쁩니다. 폭력은 상대방만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당사자를 비인간적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폭력은 상대방의 인격과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타인에 의한 폭력을 배격하기 위해서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폭력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해방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합니다. 총과 칼, 완력 등 물리적 폭력만 배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 증오, 경멸 등 정신적 폭력도 배격해야 합니다. 정신적 폭력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국민여러분! 요즘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폭력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곳에 폭력이 만연해 있습니다. 물론 지난날은 그러한 것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지 아니하고 은폐되어 있어서 국민들이 별로 문제시하지 않았던 측면도 있겠으나 폭력이 더욱더 심각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같은 것은 그야말로 도덕이 마비된 사회현상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사회의 이런 현상에 대한 대응이 너무나 저급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예로 중고등학교의 정문 옆 담벼락에 지방검찰청 명의로 ‘폭력신고센터’라는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폭력도 궁극적으로는 법률의 제재를 받아야 하고 또 그것을 통해 제거해 나가야 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검찰청에 신고해서 해결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포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모욕적인 간판을 정문 앞에 붙여놓게 하는 그 학교의 선생님들은 폭력방지를 포기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서 폭력방지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것은 교육적 처사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는 폭력이 근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성폭력과 관련하여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성폭력범죄자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서 한동안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던 일이 있고 아직도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물론 양 쪽 주장에 다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공개여부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면 굳이 성폭력 범죄자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았겠으나 이왕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이상 성폭력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성폭력범죄의 예방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그가 어떤 범죄를 범했건 법에 따른 처벌만 받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성폭력범죄로 자유형이나 재산형을 선고받았는데도 그들의 신원을 공개해서 그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주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겠으나 만약 그러한 점이 있다면 관련법을 개정해서 그 공개토록 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범죄의 경우에도 법률적으로는 자유형이나 재산형을 선고받고서도 명예훼손 기타 여러 가지의 불이익을 받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법률적 문제로 성폭력범죄자의 신원 공개를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형사정책적 차원에서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파렴치한 성폭력범죄를 없앨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성폭력범죄자의 신원을 공개하든 공개하지 않든 그런 방식으로는 성폭력범죄를 근절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학교폭력이든 성폭력이든 그것을 법률적으로 단속한다고 해서 근절되지 않으리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폭력영화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첨단문명을 이용한 전자오락실이 폭력교육장이 되며 인터넷통신이 성범죄의 매개물이 되는 판에 폭력을 법률적으로 처벌한다고 근절될 수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첫째, 누구나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개진할 수 있고, 그래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어야 하며, 설사 그것이 관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당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은 사기, 공갈, 폭력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실현해 가는 마당에 자기만 합법적인 방법에 의존하다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면 폭력의 유혹에 빠질 것입니다. 설사 경쟁에서 패배하더라도 그 패배가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어 부당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정치를 정상화할 뿐만 아니라 폭력이 정치와 결탁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폭력이 정치와 결탁할 때는 엄청난 이권이 개입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 검찰, 기업, 폭력조직이 결합하여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는데 이런 일이 없도록 관련 정치인과 공직자를 엄중히 문책해야 합니다.
셋째,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해서 세상의 각박함을 없애야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나 각박하면 죽기 살기 식의 경쟁이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 할 것이며 여기서 폭력이 나오게 됩니다.
넷째, 어릴 때부터 인권존중의 사상과 더불어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교육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폭력을 즐기거나 숭상하는 분위기를 없애 나가야 합니다.
다섯째, 궁극적으로 지배와 착취와 혹사와 투쟁이 아니라 창조와 생산과 봉사와 절제에서 기쁨을 얻는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요즘 횡행하는 폭력은 무엇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폭력이라기보다 생활여건은 풍요로운데 마땅한 기쁨을 찾을 수 없어 폭력적인 데로 빠져서 일어나는 폭력이 더 많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케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국민여러분! 지금까지 인간의 해방된 삶이 실현될 수 있는 정보문명시대를 맞아 이에 합당한 이념으로서 저는 민주시장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아 이를 설명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념이 제시될 수도 있겠으나 저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이유로 민주시장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옳건 그르건 정보문명시대에 적용해야 할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제시한 민주시장주의가 타당하든 타당하지 않든 그런대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며, 사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제가 정립한 신진보이념으로서의 민주시장주의를 포기할 수 없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한반도야말로 20세기를 주도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기에 바로 이 땅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극복할 새로운 이념이 나와야 하겠고, 그것은 한반도 민중운동과 한반도 통일운동이 떠맡아야 할 역사적 과제라고 봅니다. 저는 이 역사적 과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보아 지금까지 나름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념 곧 정보문명시대에 부응할 신진보이념의 정립을 위해 노력해왔던 것입니다. 앞에서 제시한 민주시장주의는 저의 이러한 문제의식과 노력의 산물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지적한 일이 있듯이 한반도의 통일은 세계적인 의의가 있는 바, 한반도의 통일은 전 세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을 넘어 새로운 이념을 지향해 나가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과 이를 통한 국민의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도 새로운 진보이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지만, 통일조국의 상을 제시하는 것을 통해 민족통일을 앞당기고 전 세계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진보이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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