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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意事必成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뜻을 품고 있으면 이룰수있다 010-7641-1981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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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보도]정운찬·박세일, 정당 창당…대선출정
‘신문명 새정치연대’ 만들어 장기표 대선후보로
김원섭 편집국장 / 2007-07-28 05:27:32
ⓒ2007 CNBNEWS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돼오다 도중 하차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다시 정치참여를 선언할 예정이다. 정 전총장은 박세일 서울대 교수와 함께 ‘신문명 새정치 연대’의 정치단체를 만들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장기표 재야인사를 대선후보로 밀기로 하고 오는 8월1일 선관위에 정당 등록과 동시에 대선후보 예비등록을 한후 8월9일 대선출정식을 가질 예정이다.

정운찬 전총장과 박세일 서울대교수는 서울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근처에 정당 사무실을 마련하고 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30일자로 발매되는 CNB저널은 정운찬 전총장의 신당작업에 대한 단독 기사를 실었다.

정 전총장과 박 교수가 대통령 후보로 미는 장기표 씨는 최근 자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제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이러한 이념과 정책을 국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이를 실현할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이라고 보아 저는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고 해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40년 넘게 민주화운동과 진보정당건설운동에 참여하면서 제 나름으로 준비해온 이념과 정책을 국민에게 알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더러 특히 그 동안 아무 사심 없이 저를 성원해 주신 분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싶어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대선 막바지 유력 후보 빅딜설

정 전총장과 박 교수의 정당창당작업은 대선 마지막 단계에서 유력 후보와의 빅딜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관련, 정치권에서는 정 전 총장의 불출마는 특히 그동안 정 전 총장을 강하게 의식해온 이명박 전 시장에게 당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특히 한나라당이 공중 분해될 경우 정 전 총장의 선택은 박 전 대표가 아닌 이 전 시장이 될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이 전 시장측은 정 전 총장의 불출마로 범여권이 꿈꿔온 호남과 충청이 연대하는 서부벨트 구상은 치명타를 맞게 될 것이며, 대안으로 충청 출신인 이해찬 전 총리 등이 떠오르겠으나 이 전 총리가 한나라당 대항마가 되기엔 너무 역부족인만큼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분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한때 봤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정 전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의 핵심에는 윤여준 전 의원이 있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정 전 총장이 지난 4월30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내가 열린우리당에 가서 지분 정치를 할 바에는 이명박-박근혜 쪽이 대통령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윤 전 의원은 정치권에서 선거 전략가로 통하며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캠프의 브레인으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 참여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장은 지난주 자청해서 윤 전 의원을 만나 거취문제를 상의했다. 2시간 가량 만남에서 윤 전 의원은 “시간을 끌면서 정치를 할듯 말듯 하는 것이 국민의 눈엔 정략적으로 계산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모습은 아니다”라며 “신념을 향해 몸을 던지든지, 아니면 빨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정 전 총장은 일면도 없는 윤 전 의원을 만나 이런 충고를 듣고 대권 도전을 포기한 쪽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총장은 대선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말을 던졌다.

■1일 선관위 등록, 9일 대선출정식

이론 경제학자인 정 전 총장은 윤 전 의원과의 만남에서 실물경제 이론가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접목하면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號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말들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전 총장이 이 전 시장 캠프에 합류할 경우 이 전 시장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갖고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정 전 총장의 캠프 합류는 경제 대통령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각종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충청권의 표를 흡수해 열세인 이 지역에서 확고한 부동표를 확보할 수 있는 강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충청권을 놓고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전 시장보다 다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윤 전 의원은 최근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검증이다 뭐다 해서 서로들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저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참 한심하다”며 “여권은 후보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 아닌가. 이대로라면 올해 대선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윤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50%가 넘는 지지율도 그 내용을 잘 뜯어봐야 한다. 우리가 ‘휘발성’이라고 얘기하는데 휘발성이 강한 지지율은 다 날아가 버리기 마련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휘발성이 강한 지지율인지 아닌지 냉정하게 다 뜯어봐야 한다”면서 “지지율이 높다는 것은 낮은 것보다는 좋지만 너무 과신해서는 안 된다. 훅하고 다 날아가면 아무 쓸모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한테도 이야기했지만, 한나라당이 1만 피트 상공을 나는 비행기라면, 노 대통령은 3만5000 피트 상공에 있는 점보비행기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우습게 아는데 노 대통령한테 까불다간 박살난다”고 충고했다.

- CNB뉴스,CNBNEWS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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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대표가 대선에 출마해야 하는 이

민주국가에서의 의사결정방법은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

지만 중요사항 즉 헌법개정이나 사안의 경우는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원칙으로 한다. 대통령선출방법은 가장

중요한 사항 중에 하나로 국회의결은 물론 국민투표절

차를 거쳐 국민의 과반수이상으로 결정된 사항이다. 이

는 민주적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

문이다.

헌법에 위배되는 중요한 문제점

이러한 국민의 과반수찬성의 민주적절차를 거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과반수가 반대하는 대통령이 탄생하는

위헌적결과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과반수의결의 절

차를 거친 과정으로 규정된 제도로 선출된 30-40%대의

지지로 당선되는 결과의 현행 대통령선출제도는 민주

적 의사결정 원칙으로 볼 때 위헌적요소가 가미된 모순

을 안고 있는 비민주적인 제도이다.(제정당시 이점을 간

과함)

이런 결과는 대통령의 통치기반의 약화는 물론 반대자

가 더 많은 대통령으로서 민주적 대표성과 지도력에 막

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정치적 혼란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의 대안으로는 대통령선출방법은 과반수이상

의 득표자로 선출하고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을 경우

상위2명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으로 개정되어

야 한다. 이는 정당 및 후보자간에 격렬한 경쟁을 완화

하여 1차 투표에서 2위를 목표로 할 수 있고 결선투표에

서 자연스럽게 정당이나 세력 간에 연합 및 합종연횡이

가능하여 당선자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

이다.

일차적 대안은 후보자간 정책연합이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앞에 두고 헌법개정은 무리가 있

어 보인다. 우선대안으로서 출마한 후 보 중에서 당선자

가 과반수이상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후보자중 일정한

득표를 기록한 후보자 중에서 정책이 비슷한 후보와 정

책연합을 실시 일정각료지분을 할애하여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는 길이다. 이는 국민의 사표심리를 방지

하고 소신 것 우수한 후보자에게 투표하게 하는 장점이

있고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관행화된다면 헌법개정 없

이 정착될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제는 민주주의의 장점이면서 단점은 권력의 승자

독식제도이다. 이는 최소한 국민의 다수 즉 과반수이상

의 지지를 받았을 경우를 전제로만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직선제 이후 30-40%대의 당선자가 권력

을 독식하는 현행 제도는 민주주의 의 정당성결여에서

오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직 국민의 다수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받는 정당성을 확보하여야 권력

의 승자독식제도나 권력도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정책후보를 자처하는 장기표후보의 집권참여의길

현정부의 경제적성과는 경제성장율. 수출. 외환보유고.

국민소득증가율 주식상승률 등 모두가 다음정부가 자신

있게 능가하기 어려운 경제실적으로 들어나고 있다. 야

당은 경제파탄정부라는 오명으로 정치적 공격을 가하였

지만 이는 정부의 역공에도 불구하고 그 해답을 제시하

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실패와 경제적 운영실패에 의하

여 낮아진 지지율만을 공격의 근거로 삼고 경제적성과

에 의한 양극화 현상이나 실업자증가의 원인과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정책후보다.

수출이나 경제실적에 의한 경제성과가 높다하더라도 부

의양극화현상은 심화될 수 있고 정보화. 기계화로 인한

산업구조변화로 실업자가 양산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원인을 지적하고 그 방법으로 경제적 이득을 분배하는

방법으로서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복지정책을 제

시하고 있다. 이는 국제적 기준에 의한 경제성과 마저

망각한 체 대안 없이 여론지지 율로만 여당을 공격하는

대 야당에 비하여 얼마나 획기적인 진단이며 대안인가.

장기표후보의 당선을 믿는 국민이 많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해법을 제시

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길은 집권에 참여하는 길이며 정

책실현의 방법으로 국민전체를 이롭게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어야 경제적발전이 국민모두에게 환영받을

일이 되고 경제는 양질에서 나아지라라고 생각한다. 그

게 아니고 경제적 성과가 양극화와 실업자양산의 주범

이라면 차라리 현상유지를 위해서도 경제발전은 스톱되

어야 옳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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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장 기 표 (張琪杓)

    영 문 명 : CHANG, KI-PYO

    생년월일 : 1945년 12월 27일

    출 생 지 : 경남 김해

    E-mail : changkp@paran.com

    주소: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1964년 마산공업고등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196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199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1997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고위지도자과정 수료

    19998년 경남대 대학원 고위정책과정 수료

    2002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 수료


    1966 삼성재벌밀수사건규탄시위주도

    1967 - 1969 군복무(월남전 참전)

    1970 - 서울대법대학생운동신문 <자유의 종> 발행

    1970 - 전태일 분신자결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 활성화 기여 및 재야민주화운동 본격시작.

    1971 - 1971 대통령선거에 학생참관인 운동 및 반독재민주화시위 주도.

    1972 -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으로 복역

    1973 - 김대중납치사건 규탄, 유신독재반대로 복역

    1974 - 1977 민청학련사건관련으로 수배

    1977 - 1979 긴급조치9호·청계피복노조사건으로 복역

    1980 -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조직국장

    1980 - 1983 김대중내란음모사건관련으로 수배

    1984 - 민주·통일 국민회의 조직, 사무차장

    1985 -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사무차장

    1988 -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정책연구실장

    1986 - 1988 5·3인천대회주도혐의로 복역

    1989 - 1990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무처장

    1989/09 - 민중당 창당선언

    1990 - 1992 민중당 정책위원장

    1990 - 1992 민중당 동작갑지구당위원장

    1991 -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1991 - 1994 동작문화센터 이사장

    1994 - 21세기사회발전연구회 회장

    1995 - 정치개혁시민연합 부위원장

    1995 - 개혁신당 부대표

    1995 - 개혁신당통합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

    1996 - 민주당 서울동작갑지구당 위원장

    1997 -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現)

    2000 - 새시대 개혁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

    2000 -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2001.4 - 민주당·자민련·민국당 3당 야합에 반대 탈당.

    2001.7 - 사단법인 한국혼혈인·입양아 연합회 상임대표

    2001.7 - 사단법인 신문명정책연구원 이사장(現)

    2001.8 - 사단법인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상임공동대표(現)

    2001.12 - 푸른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대표

    2002. 7 - 새천년민주당 영등포구을지구당 위원장.

    2003 -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2004.2- 녹색사민당 대표 최고위원

    2004. 10. 나라구하기 국민운동추진본부 대표

    2005. 3. 수도분할반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現)

    2005.3. 새정치연대 대표(現)

    저서

    1987 우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날때 <형성사>

    1987 해방의 논리와 자주사상 <도서출판 친구>

    1988 새벽노래 <미래사>

    1991 사랑의 정치를 위한 나의 구상(전8권) <한길사>

    - 한국사회개혁론

    - 민중시대의 정치와 운동,

    - 80년대의 상황과 실천

    - 지배의 논리와 해방의 논리

    - 지배의 논리와 해방의 논리2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창살의 노래 햇살의 노래

    - 우리사랑의 기쁨으로

    1995 지구촌시대 민족발전전략 <백산서당>

    1996 사랑의 원리 <한길사>

    1997 문명의 전환 <미래M&B>

    1998 국가파산을 막을 희망의 메시지 - 구국선언 <신문명>

    1999 대통령님, 나라 팔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문명>

    2001 신문명 국가비전 <신문명> 신문명 경제시론 <신문명>

    2002. 우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날때(증보판) <형성사>

    2004. 대통령 대 국민 <신문명>

    2006. 장기표의 신문명 경제비전- 한국경제 이래야 산다<명상>

    2007. 부부사랑- 그 지혜로운 행복<밀알>

    2007. 청년의 비전, 청년의 도전 - 청년에게 고함<밀알>

    2007. 신문명 국가비전 (증보판) <밀알>

    주요논문

    [민주통일민중운동론]

    [민중주체민주주의론]

    [문명의 전환에 따른 노사갈등의 새로운 해결방안]

    [한국진보운동의 현황과 전략적 과제]

    Mr.Chang Ki-Pyo

    President of New Politics Solidarity

    President of the New Civilization Policy Institute

    Hwankyung B/D 7F, 118 Jangchungdong 1-ga, Joonggu, Seoul, Korea

    Tel : 02) 2277-5253 Fax : 02) 2277-5256

    Website: www.rekorea.or.kr / www.welldom.or.kr

    E-mail: changkp@paran.com

    1945. Born in Gimhae city located in Kyoungsang Province, Korea

    1966. Admitted in the Department of Law, Seoul National Univ.

    1970s. He was at the head of the democratic struggle against Yu Shin Regime which had been a political deception invented by President Park Jounghee who had seized the helm of state through the military coup in 1961 and tried to secure the permanent seizure of power. Since the suicide of Jun Taeil who desperately demanded the improvement of working conditions and burned himself.. He struggled with the alienated people through Cheonggye Clothing Trade Union etc., and was searched and arrested several times throughout 1970s.

    1971.10. For the 1st time, he was imprisoned for one year because of leading the anti-dictatorship struggle waged by the student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1973.10. For the 2nd time, he was imprisoned because of the anti-Yu Shin dictatorship demonstration.

    1974. 4. He was searched because he led the National Confederation of Democratic Youth and Students, which protested against Yu Shin dictatorship.

    1977. 2. For the 3rd time, he was imprisoned because of the Event of Cheonggye Clothing Trade Union and the Urgent Measure No. 9 ordered by president Park Jeonghee. And he was released due to the death of president Park Jeonghee on October 26, 1979.

    1980s. During president Jeon Doohwan's regime which was established through the military coup and president Roh Taewoo's regime, he organized the Federation of People's Movement of the Democracy and Reunification which rallied the organizations of democratic movement on a national scale, with Mun Ikhwan, Gye Hoonje, Baek Giwan etc., and led the movement for the amendment of the constitution, etc. In addition to these, for the period of being made a search and imprisonment, he wrote some books on the strategy, tactics and policy of the democratic movement.

    1980. 5 He was searched because of the involvement in the so-called event of Kim Daejoong's alleged attempt to overthrow the government soon after the state of siege on May 17 in the course of trying to prevent the emergence of the new military including Jun Doohwan, Roh Taewoo.

    1984. He participated in organizing the Federation of People's Movement of the Democracy and Reunification and became chairman of policy-making bureau and secretary general in turn.

    1986. For the 4th time, he was imprisoned because of leading the Struggle of Amending the Constitution on May 3 in Incheon.

    1989. 1. Secretary General of the National Federation of the National and Democratic Movement.

    1989. He played the role of midwife organizing the People's Party which would be the 1st progressive and popular party and was responsible of making the program and basic polities of the People's Party.

    1990. He became chairman of organizing sub-committee of the Propelling Committee of the Democratic Alliance and chairman of the Drafting Committee of the Program and Policies which belonged to the Preparatory Committee of Creating the People's Party in turn.

    1990. 11. He organized the People's Party

    1991. 5. He led the Anti-Military and Democratic Struggle in May both as co-president of the National Preparing Meeting against the Barbarous Killing of Patriotic Kang Kyungdae and for Putting an End to the Terror Rule and as president of the executive committee of the Funeral Committee of Patriotic Kim Guijeong .

    1991. 8. Chairman of Policy Committee and President of Dongjak Gap District of People's Party.

    1992.10. For the 5th time, he was imprisoned because of the alleged violence of the National Security Law. He fought for the peaceful transfer of the regime.

    1995.10. He organized the Political Party of Social Reform. He became the Deputy President of the New Reforming Party. However, after the party failed in the general election for the parliament. he gave up the membership in the New Reforming Party.

    1996. 7. He founded the Policy Institute for the New Civilization and became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which offered many seminars and symposiums for policy-making. He opened the political column site, Chang Kipyo Si-Sa-Non-Pyung in the Internet where he has written a lot of famous political columns.

    2000. 3. He took part in the organization of the Democratic People's Party and became a member of Supreme Committee of the party.

    2001.7 - President of Korea Mixed Blood and Adoptee Confederation

    2001.7 - President of the New Civilization Policy Institute

    2001.8 - President of Practical BackBum Mentality Research

    2002.7 - The Millennium Democratic Party, a Chairman of a Committee of Yeongdeungpo-gu constituency

    2003.3 - President of Social Democratic Party of Korea

    2004.2 – President of Green Social Democratic Party of Korea

    2004.10 – Head of Revitalizing Korea Movement

    2005.4 – President of New Politics Solidarity

    Major Writings

    The Logic of Liberation and the Independent Idea (1988)

    When We Meet in the Name of Love(1987)

    Songs of the Dawn(1987)

    Series of Works of Chang Ki-pyo : My Idea for the Politics of Love(1991)

    1. Reformation of the Korean Society

    2. The Politics and Movement in the People's Era

    3. The Situation and Practice in the 1980's

    4. The Logic of Rule and the Logic of Emancipation I

    5. The Logic of Rule and the Logic of Emancipation II

    6. Humane and more Humane

    7. The Songs of Iron Bars and the Songs of Sunshine

    8. May we Live with the Joy of Love

    The Strategy for the National Development in the Age of Globalization.(1994)

    The Principle of Love(1996)

    The Transformation of the Civilization(1997)

    The Declaration for Saving of the Country(1998)

    Mr. President! We Hear the Voice that the Country is Being Sold(1999)

    New-Civilization National Vision (2001)

    New-Civilization Economic Essay(2001)

    Korean President vs People (2004.12)

    Major thesis

    [The Logic of Democratic Unification & Popular Movements]

    [The Logic of Subjective Populace & Democratism]

    [New Solution of a labor-management dispute in The Transformation of the Civilization]

    [The Present Condition & The Strategy for the National Progressive Development]

    [Toward the Marketism over Capitalism & Socialism]

기본정보

이름장기표 성별남자
별명장기표 지역서울시
취미없음 생일1945.12.27 (양)
Posted by 평강이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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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표 “대선 출마”
  • 황대진 기자 djhwang@chosun.com
    입력 : 2007.08.06 01:03
    • 장기표(張琪杓·사진) 새정치연대 대표가 5일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장 대표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40년 넘게 민주화·진보 정당 건설 운동을 해온 저의 꿈과 확신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이번 대선 출마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 대표는 김근태·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과 함께 1980년대 재야 운동권의 3두 마차로 꼽혔던 인물이다. 이후 기성 정치권에 들어오지 않고 민중당, 개혁신당, 새시대개혁당, 푸른정치연합, 녹색사민당 등을 만드는 등 진보 정당 운동을 벌여 왔다.

      장 대표는 “좋은 사람을 받들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나서게 됐다”며 “범여 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에 불과하다”고 했다.

    장기표씨도 대선 출사표


    새정치연대 장기표 대표가 오는 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다.

    장 대표는 김근태,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함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온 대표적 재야인사. 1989년 민중당 창당을 시발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개혁신당, 새시대개혁당, 푸른정치연합 등에 참여했으나 선거 때마다 고배를 마셨다.

    그는 “좋은 사람을 받들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나선다”면서 “5%의 지지만 얻어도 나의 이념과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돼 다음 총선에서 함께할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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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재야`장기표 대선 출마

    `영원한 재야`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가 오는 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다.

    장 대표는 5일 "좋은 사람을 받들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나서게 됐다"며 "40년간 신념을 갖고 정치적인 활동을 해온 사람인데 구태의연한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후보들을 지원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날 창당대회를 연 범여권 제3지대 신당에 대해 "대통합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으로, 우리당으로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인데 쇄신과 반성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새롭지 않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정치적 자산인 새정치연대를 오는 10월께 정당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임성현 기자]

    장기표씨 9일 대선출마

    [ 2007-08-05 13:37:04 ]


    새정치연대 장기표 대표가 오는 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다.

    장기표 대표는 지식과 기술이 국력과 복지를 결정할 것이라며 '정보문명'을 국가운영의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장기표 대표는 범여권 제3지대 신당에 대해 '도로열린우리당'으로 평가절하는 한편, 시민사회세력의 합류에 대해서도 시민운동은 정부를 비판하는 기능이 주된 것인데, 한나라당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집권하겠다고 나서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이러한 이념과 정책을 국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이를 실현할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이라고 보아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고 해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40년 넘게 민주화운동과 진보정당건설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름으로 준비해온 이념과 정책을 국민에게 알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더러 특히 그 동안 아무 사심 없이 자신을 성원해 준 분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장기표 대표는 오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뒤 같은 날 여의도에서 대선캠프 사무실 개소식도 가질 예정이다.

    장 대표는 1980년대 재야의 3두마차로 꼽히던 인물로 1989년 민중당 정책위원장, 95년 개혁신당 부대표를 거친 뒤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대표 등을 역임했으나 선거때마다 번번히 고배를 마셔왔다.
    CBS정치부 이재웅 기자 leejw@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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